한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수연.
표정은 조금 느긋하게 쉬고 있는 것 같은 미소.
팔꿈치는 모니터 위에 기대고 있다.
다른 한 손에는 커피잔을 들고 있는 상태.
컴퓨터 책상 위에는 문서 프린트한 종이뭉치가 쌓여있다.
사진 찍히기 싫은데 누가 와서 찍는 것 같은 느낌으로.
Hackerz 8

IRC 화면.
넥스트가 어두컴컴한 방에서 담배 연기를 피우며 키보드를 치고 있다.
구김이 간 와이셔츠에 까만 면 바지. 맨발.

넥스트 : [내일모레] 만만치 않은걸. ^^;;;;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있는 수연. 자기 방에서 역시 키보드를 치고 있다.
컴퓨터 옆에는 머그컵.

수연 : [su^졸려] 내일모레님이야 말로요.
넥스트 : [내일모레] 글쎄.....

담배를 끄며 새 담배를 꺼내는 넥스트.

수연 : [su^졸려] 그나저나 커널퀴즈방이라니. 누가 이런데 들어온다는 거죠.
넥스트 : [내일모레] 가끔 오는 애들이 있어. 후배 애들이긴 한데.

기지개를 켜는 수연.

수연 : [su^졸려] 그런가요? 언제 만나보고 싶은데요.
넥스트 : [내일모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넥스트 : [내일모레] 만나기 힘들지 않을까나. -_-;;;;
넥스트 : [내일모레] 이 시간에 졸려 죽겠다고 온몸으로 떠드는 것을 보면.
수연 : [su^졸려] 누군지 맞춰봐도 될까요?

씩 웃는 넥스트.

넥스트 : [내일모레] 좋지. 맞추면 오늘 밤에 데려가 주겠어.
넥스트 : [내일모레] 단 미성년자라면 사양이야. 어른의 세계라구.

잠시 생각하는 수연. 키보드를 빠르게 친다.

수연 : [su^졸려] 고구려대 위저드.

깜짝 놀라 안경을 치켜 올리는 넥스트.

수연 : [su^졸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넥스트. 한수연입니다.

화면에 fw0nnxo라는 문자열이 뜬다.
미소를 짓고 전화기를 집어드는 수연. 번호를 누른다.

넥스트의 전화기가 울린다. 전화를 받는 넥스트.

넥스트 : 역시. 한방에 알아보는군.
수연 : 오랫만이예요.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이죠?
넥스트 : 죽은 줄 알았다. 하하.....


밤 9시 30분을 가리키는 시계.

시계 방향으로 나사를 돌리는 드라이버의 끝부분.
드라이버를 내려놓으며 휴우 하고 한숨쉬는 하영.
하영을 바라보는 지호와, 아이스티 가루를 꺼내는 경민.

경민 : 늦었는데, 괜찮아요?
하영 : 맨날 전산실에서 늦게까지 있다 들어가서 괜찮아요.

아이스티 봉투를 들어 보이는 경민.

하영 : 네, 감사합니다.

그런 경민과 지호, 하영을 쳐다보는 민준과 찬석.

지호 : 유태경은..... 그 쪽이 여기 온 것 알고 있어요?
하영 : 아뇨.

잔을 받아들며 대답하는 하영.

경민 : 실망했겠군요. 선배한테.
하영 : 실망하고 자시고도 없어요. 어차피 인격적으로는 전혀 존경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냥 학번 높으니까 선배이고, 실력 있으니까 한수 접은 거였죠.
지호 : 자기 후배에게 그런 말을 들을 정도라면, 불쌍한 놈이군.
하영 : 후배들에게 자율이라는 것을 주지 않는 타입이었어요. 해킹 쪽을 뒤지고 있으면 쓸 데 없는 짓을 한다고 면박을 주곤 했으니까.
지호 : 아.... 하지만 하영씨가 사과하러 올 이유는 없어요. 잘못을 한 것은.....
하영 : 잘못은 분명 회장이 했죠. 하지만.
지호 : 하지만?
하영 : 난, 폭력으로 인해서 지식이 사라지는 시대를 혐오하거든요. 맛간 진시황의 분서갱유 퍼포먼스도 그렇고.
하영 :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머그컵에 차를 따르는 경민. 민준과 찬석에게도 차를 준다.

하영 : 난, 왜 그 인간이 갑자기 해킹을 하겠다고 삽질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고구려대 캠퍼스 잔디밭. 밤이지만 조명 때문에 그렇게 어둡지는 않은 느낌으로.
그늘 쪽에 앉아 있는 경민과 지호.

경민 : 뭐냐. 그 여자애한테 반하기라도 한 거냐?
지호 : 무슨 소리 하는거야.
경민 : 아니. 자꾸 멍~ 해 있어서 하는 말이야.

CD를 꺼내 드는 지호

경민 : 자기가 백업해 둔 거라고 들고 와 주고. 멋진 애였어.
지호 : 그렇겠지.
경민 : 정말 왜 그래? 무슨 일 있는 거야?

잔디 위로 드러눕는 지호.

지호 : 유태경 말이야.
경민 : 유태경은 또 왜? 잊어버리자고 했잖아. 아까 왔던 하영이라는 애 때문에 생각이 불쑥 나는 거야?
지호 : 아니.
지호 : 그냥.... 불쌍한 녀석일지도 몰라. 어쩌면.

미소짓는 경민.
툭툭 털고 일어나서 지호에게 손을 내민다.

경민 : 들어가자. 넥스트가 오늘 놀러 온댔잖아.

경민의 손을 잡고 일어나는 지호. CD를 들여다 본다. 휘갈겨 쓴 글씨.
Overflow Docs라는 단어와 kernel Docs라는 말이 보인다.
그 아래로는 Lee Hayoung이라고 필기체로.

맥주잔으로 건배하는 모습.

넥스트 : 동아리 방이 많이 깨끗해 졌더구나. 하여간 그 뒤집어 엎은 놈들에게 감사라도 해야겠는걸. 그 귀신바가지 소굴이 그렇게 깨끗해 질 줄 누가 알았냐.
지호 : 하하..... 넥스트 방도 귀신바가지 소굴인 건 마찬가지죠. 하숙집 아줌마가 안 쫓아내는 게 용하죠.
넥스트 : 시끄러, 임마. 아......

호프집으로 들어오는 수연. 넥스트 쪽으로 걸어 온다.
수연의 옆구리를 팡 치는 넥스트. 씩 웃는 수연.

넥스트 : 돌아왔구나, 임마.
수연 : 여전하시네요.
경민 : 누구....?
지호 : 앉으세요.

인사를 꾸벅 하는 수연.

수연 : 한수연이라고 합니다.
넥스트 : 예전에 나랑 잘 놀던 녀석이지. 며칠 전에 제대 했더라구.
경민 : 잠깐, 한수연이라면 혹시 그 gol-log 만든 한수연?
수연 : 네? 아.... 네. 보셨어요?
경민 : 최근에 나온 것 중에서도 끝내주는 편이라서, 어떤 녀석이 만들었는지 꼭 만나 보고 싶었는데. 넥스트랑 아는 사람이었다니 세상 참 좁네요.

수연을 쳐다보는 넥스트.
빙긋 웃는 수연.

넥스트 : gol-log라고? 아.... 그 로그 분석.....
수연 : 이름이~ 좌우대칭이죠.
지호 : superblock이라는 닉으로 돌아다니고 있어서 본명 알아보는 데 힘들었어요.
수연 : 하하.....
넥스트 : 녀석, 참. 제대했으면 퍼지게 놀 일이지 그러고 있었냐?

하늘에 둥실 떠 있는 보름달.

거리를 걷는 수연, 지호, 경민, 넥스트.
길 건너로 찬석과 민준이 꾸벅 인사하며 달려간다.
버스에 오르는 민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찬석.

경민 : 수연씨는 집이 어디예요?
수연 : 말 놓으시죠. 저보다 학번도 한 학번 높으시고.

수연과 경민을 툭툭 치며 어깨에 손을 올리는 넥스트.

넥스트 : 그래. 서로 말 놓고 그래라. 뭐, 한살 차이 갖고 말이야.
지호 : 넥스트.
넥스트 : 응?
지호 : 오늘 서플라이 쪽의 여자애가 왔었어요. 드라이버랑 중고 카드랑 CD 몇 장을 들고 말이예요.
넥스트 : 그래서?
지호 : 미안하다고. 조립 다 해놓고 자기가 백업한 내용도 주고 갔어요.
넥스트 : 자기가 한 일도 아닌데 왜 미안하대? 미안하다는 말은 거기 회장이 해야 할 말이지.
수연 : 분노 때문이겠지요.
넥스트 : 분노?

수연의 얼굴 클로즈업.

수연 : 지식이 폭력 앞에 사라져 나가는 꼴에 대한 분노랄까요. 그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라면.... 그래서였을 것 같아요. 아마도.
지호 : (off) 하영씨와..... 같은 말이다.
경민 : 빙고! 맞았어요.
넥스트 : 괜찮은 애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언제 한번 IRC로 불러 내지 그래?
경민 : 그래 버릴까요? 그렇지 않아도 누가 좀 두근두근 하는 것 같던데.
지호 : 죽는다~!
넥스트 : 하하....

뭔가 신경 쓰이는 듯 한 수연. 고개를 젓는다.

수연 : (off) 서플라이....냐.


아침.
서플라이 동아리방 창문 클로즈업

진구 : 뭐 하자는 거야!

하영의 어깨에 마우스가 날아와 부딪친다.
진구를 노려보는 하영.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마우스.

진구 : 왜 말이 없는 거야!
하영 :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중요한 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었다고.
진구 : 중요한 일 좋아하네. 네가 동아리가 안중에나 있어?

이를 악 물고 참는 듯한 표정의 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