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리고 오늘 아침에
온라인으로만 이야기를 하던 친구 한 명이
(원래는 지난 봄에 만났어야 하는데 모종의 사고로 병원에 좀 들어가 있어서 늦어졌지요. 제가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저도 인천에 오는 일로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 퇴원해서 집에 갔다고 합니다.)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다음번에 만나면 뭔가 선물을 하고 싶은데, 책 같은 것 갖고싶은 것 없느냐고 했다.
“주고싶은 것으로 주세요.”
그 친구는 숙제를 받은 어린아이처럼 곤란했던 것 같았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오늘 그 친구는 메신저로 말을 걸어서, 시크릿 가든의 CD를 선물하고 싶은데 갖고있느냐/혹은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좋아는 하지만 CD는 없다고 말했다.
숙제가 풀린듯 기쁜 모양이었다.
우연히 지난달에 선물받은 몇 권의 책들은
그 중에는 받고 기뻤던 것도 있고
조금 당혹스러웠던 것도 있고
아, 그래. 온라인상의 친구이지만, 어쨌건 실제 나이라는 것도 있기는 있지. 라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도 있고.
어쨌건 그렇게 선물받은 책은, 가끔은 겹치거나 너무나 취향이 아니거나 초등학생이 니체를 선물받거나 대학생이 만화 “대장금” 같은 것을 선물받듯 곤란한 것도 있기는 있지만, 그래도 준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어서 좋다.
김삼순에도 나왔다는 대사라고 하고, 식객인가 사랑해인가 하여간 허영만 화백 만화에도 나왔던 대사인데
“네가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면, 나는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게 미슐랭의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슐랭 가이드에서 생각해서. 아, 참으로 불어 영어 짬뽕의 말이로구나. 기 드 미슐랭에서.)
미슐랭은 사실 요리사나 뭐가 아니라 미쉐린 타이어의 그 사람이라서.
저 말은 브리야 샤바랭의 말이다. 실수. 실수.
글쎄.
예전에는 책 선물을 별로 받지 못해서 잘 몰랐던 것 같지만
요즘은 글쎄. 책은 그 책을 선물한 사람을 어떻게든 반영한다. 다른 물건들도 그렇겠지만 책은 확실하게 주는 사람의 자기 표현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그걸 깨달은 것은 올 초…… 그리고 지난 달에 갑작스레 받은 몇 권의 책들이 또한 그렇고.
세이군이 사준 책들은 미안하게도 세이군을 확고하게 반영하지는 못한다. 그건 그가 가장 많이 읽는 종류의 책이 컴책들이고, 아무리 이 인간이라고 해도 컴책을 여친에게 선물할 정도의 괴악한 센스는 지니지 않았더니 어설프게 시집이며 선물한 것이 그다지 효과가 좋지 못한 케이스였다.
예전에 군산 내려가는 길에 갑자기 한권 더 생겼다고 선물로 받은 까치문고판 “샤머니즘”은, 좋은 자료였다. 좋은 자료라는 것은 읽고, 여기서 새끼를 치며 다른 자료들을 찾을 수 있게 만드는 그런 포인트를 말하는 것이다. 그분은 내가 그분의 서재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 마다 “책 사냥 좀 하지 마라!”고 그러시는데, 그렇다고 내가 그분의 책을 들고 날른 적은 없지만;;; 그 사냥이라는 것이 확실히 무엇인지 알기는 안다. 서재를 읽히는 것은 사람의 속을 읽히는 것과 비슷한 기분일까. 그렇다면 아마도 책꽂이 앞에서 시선을 그저 흘리는 것이 제일 좋은 길일 지도 모르지만, 다만, 내가 읽은 것과 관련있는 부분에서는 앞으로도 눈길이 멈출 지 모른다. 그건 거의 본능;; 에 속하는 것이니까.
……할리퀸 로맨스에서 그다지 진화하지 않은 류의 책을 받을 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읽지 않고 지나갔을 뿐, 인 것일 수도 있다.
야오이 만화를 선물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고, 난 에로책도 상관은 없는데 ……제발 일대 일 대응으로 권해주시겠어요? (이건 제발. 임. 다대 일 대응이나 다대 다 대응의 에로에로는 정말로 칠색 팔색 질색을 함. 거의 100% 안 봅니다.)
며칠 전 제대하고 현재 알바를 물색하며 집에서 빈둥거리는 내 동생이 다른 여러가지 책들을 읽으면서 요즘 나오는 판소들 읽는다면 나도 옆에서 같이 보고 있겠지만, 하루종일 판타지만 끼고 있으면 내쫓아 버릴 거다. 밥 먹고 반찬 먹으면서 가끔 입맛 당길 때 피자를 먹을 수는 있겠지만, 맨날 피자만 먹고 사는 것은 곤란하니까.
하여간 나는
누가 그 사람이 지난 1년동안 읽은 책의 로그를 알려주면, 그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지, 친해질 수 있을 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그 이상을 알게 될 날도 올 수 있겠지만.
적어도, 같이 있으면 맨날 싸우겠구나 싶은 사람 정도는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책은 쌓여있는 팬시용품 중 하나 골라서 떠안기는 것과는 달리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고를 수 밖에 없는 물건이니까.
그래서 책 선물을 받는 것은 참, 흥미진진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활의 흔적
독서, 서재,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