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가 아닌 다른 사람이 원작의 속편을 달고 만들어낸 물건 치고 성한 것 없다. 는 것은 꽤 진리에 가까운 말이다.
예를 들면 결국 스칼렛과 레트가 다시 만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잘 나가다가 나중에는 완전 산으로 가는 그 “스칼렛”이라든가. (젠장)
……한국에서 멋대로 만들어진 “미세스 캔디”라든가……(아앍)
뭐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게 많구나……. 소위 흑역사라는 것들. 차라리 트리브라 팬픽을 보러 가겠다. 아아.
하여간 그래서 이번에도 그다지 신통할 것은 없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아예 마음을 비우고 봤다. 고증에 충실한 팬픽 이상은 되었다. 이만하면 다른 작가가 받아 쓴 속편에 대한 평으로는 끝내주는 호평이다. 물론 몇가지, 좀 작위적인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후두염. 미니 메이 건이 좀 크기는 하지만. 나는 그게 해먼드 씨 댁 쌍둥이들을 돌보면서 나올 줄 알았는데 토머스 씨 댁 노아를 치료하는 것으로 나오는 것도 그렇고. (원래는 해먼드네 막내 쌍둥이들처럼 악화되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뭐, 두 집 다 후두염은 앓았던 것 같지만 메인 이벤트가 노아였으니……) 게다가 약이 있어서 도움은 되었겠지만 아주머니가 어린 앤보다도 더 쩔쩔 매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다른 부분은 좋았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달걀 장수로 생각했던(원래는 할아버지도 아니었고 학교 선생님이었던) 존슨 씨에게 단어를 배우는 것. 11살이라고는 해도 고아 출신에 제대로 지속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을 앤이 그만큼 다양하고 조숙한 단어들을 구사하게 된 이유가 구체적으로 나온 것이 인상적이었다. 앤이 어머니의 그릇장 유리 속에서 만들어낸 상상의 친구, 케이티 모리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서는 언젠가 만나게 될 그녀의 친구, 다이애나가 떠올랐고.
하지만 요즘 타로 배우러 다니면서 들은 이야기들 때문일까, 아니면 시크릿이나 신과 나눈 이야기 같은 것을 읽어서일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앤이 맥도걸 선생님의 수업에서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매일 그 사진을 바라보며 동경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열망하는 앤은 그 사진을 훔치지만 결국 자신에게 그림을 주러 온(해먼드 씨도 죽고 앤이 고아원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찾아온) 맥도걸 선생님의 코트 속에 사진을 되돌려 놓는다.
강한 열망이 소망을 부른다는 것을, 그 어려움 속에서도 진정한 친구를 꿈꾸고, 배우고 싶어하고 책을 읽고 상상을 하고, 어휘를 늘려가는 만큼 생각과 꿈을 늘려가던 그 어린아이는 알고 있을까. 깜짝 놀랐던 것 중 하나는 거의 마지막 부분, 프린스 에드워드 섬으로 양녀로 갈 어린아이와 일을 도울 아이를 보내게 되었을 때, 앤이 그곳으로 가서 잠시나마 어린아이다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강렬한 열망을 기도하며, 동시에 자신이 받았던 조금이나마 좋았던 것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앤이, 자신이 쓸모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실제로도 열한명 분량의 식사를 준비하고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돌보고 빨래며 청소같은 일도 해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지난번 시크릿을 읽고 그 관련 카페를 찾아보다 보았던, 소원만 허공에 둥둥 매달아놓는 바보들.의 모습과 비교하게 되었다. 열망이란 그렇게 품는 것이다. 젠장.
처음에는 토머스 부인의 이악함에 기가 찼다. 월터와 버사 셜리 부부와 함께 보냈던 즐거웠던 날들과, 부부가 병으로 죽어 받지 못한 일당과, 그리고 그집의 가구와 버사 셜리가 입던 옷들, 을 생각하며 앤을 데려온 것 까지는 뭐, 그럴 수 있다. 그 당시에 고아들이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 생각하면, 그렇게 맡아 준 것만 해도 고맙다. 자신이 낳은 아들들보다 고작 한 살 많을 뿐인 앤에게는 온갖 일을 시키고, 사내아이들은 놀게 내버려 둔 것도, 그 가난한 살림에 군입이 붙어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랬을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런데.
토머스 씨가 술을 먹고 실수를 하여 해고되고 일가가 떠나게 되었을 때, 버사의 친구이고 이웃이었던 제시 글리슨 부인은 분명히 앤을 데려가겠다고 했다. 아이의 행복은 물론이거니와 입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그거 괜찮은 제안이지. 그런데 이 여편네가 겨우 여섯살 난 앤에게 물 나르고 빨래를 하고 아이를 돌보고 설거지를 하고 할 궁리나 하면서 “앤에게는 여기가 충분하다”고 말할 때, 우와, 뭐 이따위 게 다 있나 싶었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나온 사람이 말했듯이, 애초에 앤이 없었으면 어차피 당신이 다 했을 일 아니냐고.) 물론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고, 악당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악한 인간임에는 틀림없겠지. 그래도 토머스 씨도 토머스 부인도, 앤이 행복해지려고 하는 모습에 짜증을 내면서도 조금씩 변해가기는 했다.
학교 장면에서는 역시, 앤은 핸더슨 선생같은 모습의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상적이고 아름답고 가르치려는 열의가 있는 훌륭한 교사로 나온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에는 진정 나쁜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좋은 사람과, 그저그런 사람과, 좋게 변화하고 싶지만 그리 하지 못하고 실의에 젖어있다가 앤을 만나면서 변화하는 사람이 있을 뿐. 지금까지 읽어 본 무언가의 “속편” 중에서는 가장, 원작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 앤은 저것보다는 조금 더 시끄럽고 원기넘쳤던 것 같은데?
……그리고 6학년 랜돌프(열등생으로 8년이나 초등학교를 다닌)와 싸우고 그가 집어던진 사전을 받으면서 “고마워, 이렇게 너그러운 선물을 줘서.”라고 대꾸하는 앤은 아무래도 길버트와 싸울 때 보다 더 영악스러운데 말입니다;;;; 는 둘째치고 뭐, 괜찮아요. 이정도면.
읽고보고듣고
그래도 100%는 아니지만, 속편도 괜찮은게 가끔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