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 서+파 연속상영을 보고 왔습니다.
서를 오랜만에 큰 화면으로 다시 보니 좋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그 야시마 작전의 사도도 큰 화면으로 보니 좋고,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에바 초호기라든가. 좋아하는 장면들을 DVD의 작은 화면이 아니라 극장 화면으로 보는 것은 정말 감동이죠. 그런데.
문제는 제가 어제 굽본좌의 책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예, 2차 세계대전 만화 1권요.
그랬더니 무슨 불상사가 있었는고 하니, 서의 마지막 부분, 야시마 전투 끝나고 그 “이럴때는 웃으면 좋다고 생각해”하는 신지의 말에 미소짓는 레이 있잖습니까! 아아, 레이! 그 백만불짜리 미소!!!!
그 미소를 보면서

김괴링링링링….을 떠올렸다능…….
이런 젠장 OTL
에바를 한참 볼 당시 저는 코코마 고딩이었죠. 13년 넘게 에바 덕질을 해온 저로서는, 이번 연속상영은 그야말로 큼직한 선물상자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라서.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에바는 다들 아시다 시피, 조루 배터리가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죠. 그놈의 배터리 조루만 없었어도 에바는 1쿨로 끝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요즘 아이폰 들어오는 상황에 비추어 혼자 ㅋㅋㅋ 배터리 조루 하면서 좀 웃었고요.
서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도가 야시마 작전의 사도라면, 파에서 좋아하는 놈은 눈깔이죠. 눈깔이 잡으러 갈 때 전투용 격벽들이 연결되며 기울어져 길을 만들어내는 장면, 그리고 뜻밖이지만 전차 두 대가 엇갈리며 지나가는 장면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 저건 CG다. 하고 확실하게 드러나면서도, 그러면서도 저걸 저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싶은 것이요.
신지는 서에서의 개념충전에 이어, 파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소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잔인하게도 동요를 배경으로 아스카가 탄 3호기가 박살나고, 초호기가 엔트리플러그를 깨무는 장면까지 가면서도, 신지는 계속 멈추라고 몸부림을 치고, 결국 네르프를 떠나기로 했다가도 레이가 위기에 처한 것을 보고, 돌아가 제 발로 에바를 탑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간절한 소망으로 레이를 사도의 코어에서 끄집어내기까지 하죠. 그 순간 에바의 모든 것은 한 소년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움직였고, 그 모든 것은 신지 자신의 의지입니다. 불행히도 아스카가 이러저러한 사고들을 당했지만, 그렇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신지, 그리고 인형같은 무감정한 아이가 아니라, 아스카의 손바닥을 탁, 가로막기도 하고, 이카리 겐도와 신지 사이를 화해시키기 위해 요리 연습을 하고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는, 그저 많이 서투르구나 싶은 레이의 모습은 정말로, 13년 에바 덕질이 아깝지 않게 좋았습니다. 물론 레이에게 도시락을 싸다 주는 신지와, 같이 밥먹으면서 자기는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레이에게는 알약만 잔뜩 주는 겐도는 아주 대조적이었습니다만.
예전에는 관처럼 보였던 제레의 모노리스는, 이제는 더 얇아져서 초콜릿 폰처럼 보입니다. 뭐, 그건그렇고 저 동네는 사도 한 번 오면 온 동네에 피의 비가 내리는데, 빨래에서 비린내 나서 어떻게 사나 싶기도 하고. 그 모든 것을 넘어서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있었으니.
“소프트웨어 공학의 관점에서 에바를 보면, 이건 네르프는 아주 막장인 것이야.”
뭐 그런 이야기가. 생각해 보세요, 옛날옛날 메칸더 브이도 말입니다, 출격했다 돌아오면 그때그때 정비 완료했고, 매 화 조금씩 새로운 무기나 기술, 점진적인 마이너 업그레이드가 계속되었으며, 중간에 비행기 3단합체에서 자동차 3단합체로, 소프트웨어 생명주기에 따라 메이저 업그레이드도 이루어졌죠. 근데 에바는 뭡니까.
베타테스트도 아닌 거의 알파테스트 단계에서 사람을 태우죠……
제대로 수리도 못한 채 다음 적이 오죠. 부품 호환도 잘 안 되는 것 같죠. 그런데다 배터리 조루죠. 젠장.
마이너 업그레이드? 택도 없죠.
버전이 올라갈 수록 막장이죠. 터지고 깨지고 사도에게 침식당하죠. 이건 뭐 이렇게 치면 초호기야말로, 원 오브 사우전드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런데다 이번에 2호기 비스트 모드로 변신하는 것 보니까, 이스터 에그도 아니고 꽤 큰 기능이 있는 것을 작전부장인 미사토도 모르죠. 이건 다시 말해서 문서화 안 되고 있는 거죠.
테스트라는 것이 거의 실전에 가깝고, 해도 이건 뭐 파일럿 상태는 점검해도 사실상은 블랙박스 테스트만 계속 하죠. 의학으로 치면 대증요법이죠.
차라리 통제 가능하고 예측대로 움직이는 머신도 아니고, 생체병기를 쓰니 맨날 폭주나 하고 심지어는 엔트리 플러그 안 넣는다고 지랄까지 하죠. 아, 물론 그 기계병기에 대해서는 JA 그 인간이 만든 것 에피소드에서 나왔지만(TV판) 그거야 네르프에서도 손을 좀 쓴 것이고. 저런 막장스런 물건들을 갖고 승리를 거둬내는 미사토는, 술을 많이 마시건 살림솜씨가 개판이건 상관없이 정말로 훌륭한 전술가인 것입니다. 정말이지, 소프트웨어 공학의 관리기법과 담 쌓은 네르프, 그 중에서도 대학 동기인 리츠코마저 소공과 상관없이 시스템을 굴리는 꼬라지를 보고 있으면 제가 미사토라도 술이 늘겠죠. 그녀의 음주, 이해할 수 있습니다.
27트랙으로 드디어 넘어간 신지의 워크맨. 마리의 한 손이 의수라 이거죠….. 그것도 뭔가 복선이 되나? 그렇지 않으면 굳이 그렇게 설정할 이유도. 깔깔이 수트는 유럽에서 입던 거고, 일본에 와서는 다른 아이들처럼 착 달라붙는 핑크색 수트를 입습니다. 가슴은 셋 중 제일 크고요. 아스카의 속성을 다소 가져간 부분이 있지만, 아스카가 자기 자신을 인정받기 위해 에바에 탄다면 이쪽은 “재미있어서” 로 조금 더 광기있는 캐릭터가 될 듯. 그나저나.
카지 씨는 악수를 손으로 안 하고 가슴을 잡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아주 훌륭한 남자죠. 베이클라이트로 굳힌 아담이 아니라, 느부갓네살의 열쇠라고 가져온게 어째 내 눈에는 무슨 맨드레이크로 보일 뿐이고.
어쨌건 결론은 뜻밖에도 제게는 청춘의 여신과도 같았던 레이는 진짜 여신이 되어버렸다는 것. “이카리군이 더이상 에바에 타지 않아도 되게 할 거야” 였던가요. 신지의 “레이를 돌려줘”와, 미사토의 “가라, 신지! 네가 원하는 것을 해!”하는 장면과 함께, 그 마지막 10분은 거의 눈물 그렁그렁해서 봤습니다. (미사토의 그 대사는 사실 베르바라의 자르제 장군이, 그렇게 막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다 혁명 전야 출동 명령을 받고 떠나는 딸네미를 보고 “가거라 오스칼, 네 정열이 이끄는대로.”하는 대사와 순간 겹치며 봤습니다. 역시 좋아하는 대사죠. 물론….. 베르바라에서야 천하의 자르제 장군도 딸네미가 전쟁에 뛰어드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아닌, 국왕 세력에 맞서 싸우는 것에는 뒷목을 잡을 노릇이었지만.)
ps) 근데, 카오루가 겐도에게 “아버지”라고 부른단 말입니다. 아들을 낳으면 두한….. 이 아니라 신지, 딸을 낳으면 레이라고 짓겠다 했던 겐도와 유이 부부. 그리고 두 사람이 낳은 아들인 신지와, 상당한 네타가 있지만 어쨌건…. 인 레이. TV판에서 카오루가 레이를 보고 “너는 나와 같구나” 했던 것과 결국은 이어지는 것인가요. 어쨌건 마지막의 서비스 서비스까지, 앉아서 죽 보고 박수치고 나왔습니다. 서비스 서비스를 안 들으면 그건 에바를 본 게 아니죠!
ps2) 근데 코 앞에서 에바 한 대가 사도에게 잡아먹히고 다른 에바가 그 핵을 열어 레이를 끄집어냈으며, 리리스화된 레이와 신에 가까워진 에바가 만나서 서드 임팩트가 시작되려고 하고 머리 위에는 블랙홀 같은 것이 열려서 다 빨아들이며 에바에게 날개와 고리가 생기는 그 막장스런 상황에서 분석하고 있는 네르프 직원들은 대체 어느 별나라 용사님들입니까!!!!!! 인간이 아냐!!!!!
읽고보고듣고
CGV, 에반게리온, 에반게리온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