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차돌에 바람이 들면 백리를 날아가고
빠순이 안티가 되면 더욱 무서운 법이라 한다.
무슨 뜻인고 하니 오늘 보고 온 뮤지컬 바람의 나라에 대한 말이다.
좋다. 그래, 나름대로 노력한 구석이 엿보이고, 좋은 점들도 있었다.
일단 전편에서, 거의 무시당하다 시피 했던 세류 공주님은 이번에 확 살아났다.
전편에서 고구려의 일반 무사와 복장상 다른게 없었던 공주님의 의상은 이번에 확실히 장군이지만 공주님답게 돋보이도록 바뀌었고, 동생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주절거리며 조금 지루하게 나오던 대사도 간결히 정리되며, 해명의 뜻을 이었으나 이제 그의 의지를 받들어 무휼을 섬기겠다 하는 괴유에게 검을 건네주는, 승리의 여신과도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며, 또한 (원작을 안 본 사람에게는 난데없는) 병아리의 등장에서 호동에게 신수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대사를 하시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전투신은 작년에도 그랬듯이 마로나 괴유를 합쳐놓은 것보다 더 날아다니신다. (아니, 작년 괴유는 올해보다는 좀 더 잘 날아다녔으니까 뭐……)
전편에서 케이크 통;;;을 타고 다니던 가희는 양파;;;;를 타고 다닌다. 물론 가희는 불사불로초인 약초이니, 케이크를 타고 다니는 것 보다는 낫다고 본다. 근데 양파가 케이크 통보다 조종하기 어렵지 않나? 무엇을 두고 양파라고 하는지는, 가서 보시거나 어디 사진 공개된 것을 보시면 알 것이다. 패스.
배경에 쏘는 영상에 더 신경썼다. 군더더기에 가깝던 장면들을 많이 쳐냈다. 기쁘게도 호동이의 대사도 많이 잘렸다. 그 이유는 이따가 추가로.
사신의 노래, 그대의 수호신으로 그대의 목숨을 지키겠노라 하던 그 노래는 작년에 곡은 밋밋한데다 화음이 좀 삐꾸였는데, 올해는 편곡을 좀 더 흥겨우면서도 화음이 근사하게 맞아서 좋았다. 게다가 그 장면에서 등장하는 청룡은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은 없었지만 위엄있는 “하안사녀”였다. 이번에는 주작도 뜨고, 각자의 신수가 뜨면 그 뒷배경에서 해당 인물이 신수를 부르는 춤을 추는 것이 사신의 이미지를 제대로 표현해냈다.
근데 2막에서 청룡이 치는 대사가 조금 뜬금없다. 아니, 2막의 대사 문제는 그것 하나뿐이 아니니 패스.
2006 버전에서 어색했던, 연의 첫 등장 장면
“꽃차 타고 시집왔어요, 당신의 사랑에 행복했어요~~~” 하는 장면은
겨울날 아직 소년이던 무휼이 연에게 언젠가 부여로 쳐들어가 그곳에 연이를 위한 예쁜 궁을 짓고, 아이를 낳으면 가장 사랑받는 아이만이 받을 수 있을 그런 이름, 호동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겠다 말하던 대사로 바뀌었다.
전년도에 이지의 초야와 연의 죽음이 교차되는 장면에서 혼돈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다더니 그 점을 배려하느라 그랬는지 조금은 더 배경 설명이 들어간다. 그래, 나는 지금 태왕사신기에서 연호개 아역을 한 배우가 호동이 역할을 한다고 굳이 이 뮤지컬에 안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설마 극이 개판이 되더라도 해명혜압 커플이 바로잡아 줄 것이다. 혜압의 고미경님 파워는 상당히 강렬하고, 실제로 이번 극에서 상당히 그 불안정한 중심을 잘 잡아 주셨으니까. 그런데.
관객에게 설명을 하는 것은 좋은데, 무휼은 그렇게 잡소리를 주절주절 하는 왕이 아니라는 거다.
원작에서도 직접 말하지 못했던, 그저 마음에만 품고 있었을, 무휼이 연에게 다정하게 기대는 대사 따위 우리 왕은 치지 않는다. 2막에서 나는 누구냐 하고 무휼이 그러는 것도, 무휼이 무슨 우리 삽질쟁이 시라노도 아니고, 하여간 그렇게 전쟁 한참 해놓고 나서 그러는 것은 무휼왕님이 하실 대사가 아니라는 거다. 무휼은 말이 적고, 눈빛은 오만한,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구구절절 풀어내며 삽질하지 않는 그런 왕이다. 저건 무휼이 아니다. 어디 안드로메다의 외계인이 무휼을 잡아먹고 그 껍질만 쓰고 있는 거라고. 게다가 하나 더 흠을 잡자면, 그 곡 자체가 고영빈씨 톤에 안 맞는다. 아예 좀 더 가볍고 높은 톤으로 가던가, 아니면 분위기 맞춰서 구에에 하고 땅파고 암울하게 가지, 그 곡 하나만 톤이 어정쩡한 것이 들으면서 참으로 민망하였다. 가사도 민망하기는 했지만 곡 자체가 더욱.
그래 전쟁 이야기 나왔으니 말인데, 해명이 걸어나오면서 “마마, 당신은 모두에게 빚지셨습니다.” 하는 그 대사가 “너무 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가 되다니 경악했어. 저 대사 누가 쓴 거야, 어떤 새끼야!!!!!!!!
무휼의 노래 중 “보아라 이 땅의 눈물을, 들어라 바람의 노래를” 그 대사가 마구 난도질되었으며, 한정된 곡 안에 더 많은 정보를 집어넣으려 용을 쓰다 보니 박자는 어색해지고 라임은 맞지 않아, 작사한 인간을 붙잡아다 인천앞바다에 거꾸로 처박고 싶어졌다.
게다가 쓸모없는 대사의 한 예로, 호동이가 죽어 쓰러진(아니, 지난번에는 그냥 흰 빛 속에 무릎에 머리를 묻고 주저앉아 있어도 다들 슬퍼서 미치려고 했는데, 아주 노란 빛 속에 시체놀이를 하는데도 하나도 안 슬픈거다. 저렇게 표현해야만 알아듣는건가 기가 막히기도 하고) 장면에서 이지가 “그래서 내가 그 애를 죽였다” 하는데, 데엥. 뒤에 원비가 참소해서 죽었다고 삼국사기에서 인용한 자막이 뜨는데, 왜 그 대사까지 쳐야 하는데? 그러면 호동왕자가 그리 죽은 줄, 사람들이 모를까봐?
좋다. 그런 것도 어떻게 이해해 준다고 치자.
정말로 용서 안 되는 것은 호동이 역 한 배우다. 김호영. 하아, 젠장.
이 배우는, 태왕사신기에 상당히 비중있는 역의 아역으로 출연해 놓고(대체 스무살 넘은 사람이 어쩌자고 아역을 맡았는지, 이해는 안 간다), 그 작품이 어떤 구설에 올랐는지도 모르고 뻔뻔하게 바람의 나라에 출연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솔직히 그건 연출가가 나쁘다고 생각한다. 원작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대한민국에 배우가 그렇게 없냐? 차라리 아역을 쓰지 그랬느냐고! 송지나나 이지나나, 지나는 다 그렇게 원작자에게 제대로 대하지 않는거냐!!!!!!! 난 작년에 이지나씨가 했던 연출 나름대로 좋아했단 말이야! 어떻게 배역을 그렇게 골라서 욕을 잡수시냐고!- 그렇다고 해도 나는 어떻게든, 1막에서는 화를 내었지만 2막 들어가며 그 사람이 태왕사신기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최대한 잊고 냉정하게 화면을 바라보려 노력했다. 그리고 사실 어린아이 호동이 까지는 어떻게 참고 못 들어주겠다 생각했지만, 열 다섯 살의 호동이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지도, 적어도 마이너스 점수는 아니고 1점 정도는 주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애써 애써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배우는 자기 역에 대한 해석을 하지 않았다.
호동이는 1막에서 다섯 살이고, 2막에서는 15살 정도 되었다. 물론 모래꽃 장면에서는 다시 5살이라고 치면 된다. 미안하지만 5살 어린아이 장면의 호동이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정신박약아를 어설프게 흉내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아, 그렇지. 요즘은 정박아라는 표현 함부로 쓰면 욕 먹지. 하여간 어린아이를 벤치마킹한 게 아니라, 마라톤을 잘못 본 것 같았다. 그래, 마라톤의 조승우 씨는 연기라도 잘 했지. 초원이 역 하려고 그렇게 노력했다잖아?
청소년 호동이;;;; 의 노래를 듣다가, 나는 어느 순간 눈을 감았다.
그리고 깨달았는데, 그건 조정석씨의 호동이를 그대로 따라부른 것에 불과했다. 노리베의 사토코가 마야의 사토코를 벤치마킹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거다. (나름 매니악한 비유인가!) 참고로 작년에 해명은 더블 캐스팅이었지만, 두 해명의 분위기는 김법래 해명은 대마왕, 그리고 홍경수 해명은 그 운명을 슬퍼하면서도 이끌어가는, 그렇게 같으나 상이한 것이었다.
……무슨 SM 소속 가수냐, 부른 톤 그대로 따라부르게. 다시 말하면 씹어서 삼켜 제대로 소화하여 자신의 해석을 해낸 것이 아니라, 그냥 본대로 그대로 따라하였느냐는 말이 나올 만큼 황당했다. 그 호동이만으로도 안티가 되기에 충분했다. 아니, 따라 부르는 데도 더 나쁜 것이, 청소년이 아니라 호모라는 말이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니었다는 거다.
……참고로 나는 장점을 찾아보려고 노력은 많이 했다. 그래, 그래도 노력은 하는구나. 말하는 게 호모같기는 해도 대사 타이밍이 나쁘지 않고, 오늘이 초연이니까 더 그런 것도 있겠지. 하고 나는 애썼다. 용을 썼다. 배우가 나쁜 것보다는, 해석을 하지 않았다는 게 나빴다고 보인다. 그래, 그래.
그리고 아까 대사들 주절주절 붙어서 곡의 흐름이 깨졌다는 이야기 했는데.
인물이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그 서사적 구조에는 이미 금이 간 게 아닌가? 오늘 본 바람의 나라 인물들은 변명하기에 급급했고, 그러면서도 후까시 나는 대사에만 목을 매고 있었다. 나는 1막이 끝나고 쓰레기통을 걷어찼고, 그리고 지금 집에 와 보니 오늘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손목에서 팔꿈치, 어깨, 가슴과 등에 두드러기가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칼라민 로션을 바르고 자던가 해야 할 것 같다. 지금 가려워 죽겠다.
ANTI태왕복사기!!!,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