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월하나 하이바맨만 쓰느라고
황금새의 캐릭터들이 그립다는 리퀘를 받고
나이든 신하를 놀리는 젊은 황제. 라는 컨셉으로 가볍게 써 보았습니다.
원문은 : http://www.hamadris.com/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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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혼인하지 않았지?”
문 득, 정교한 봉합을 하던 손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부분마취를 하기는 했어도, 검에 베이고 찢긴 살갗이 봉합되는 것은 그다지 속 편한 느낌이 아닐텐데. 젊고, 자신의 고통에는 유난히 무감한 체 이를 악물며 웃고 있는 황제는 속을 알 수 없는 그 눈동자를 들어 나이 든 의사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말이야.”
“폐하를 모시다 보니, 어쩌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티아 크로마는 억지로 둘러대었지만, 그런 빈약한 변명에 고개를 끄덕일 다스카가 아니었다.
“저런, 가정도 포기하고 나를 돌보라고 한 적은 없다. 바쁘기로 치면, 태사께서도 그대 못지 않게 바쁘셨지만 멀쩡히 혼인하고 사셨지. 내 핑계를 대면, 기분이 더 나아지던가.”
“……”
“왜.”
“눈 코 뜰 새 없이 폐하의 상처를 꿰매는 동안, 신은 이미 늙어 버린 것을 어찌 하겠습니까.”
“내 핑계 대지 말라니까.”
“폐하의 옥체 어디 한 구석, 흉터 없는 곳이 없지 않습니까.”
바늘 끝이 멈춘 것을 깨닫고, 다스카는 몸을 일으켰다. 어깨에서 환의가 흘러내려 상반신이 훤히 드러났다. 그녀는 뒤로 대충 묶어 넘긴 머리카락이 상처에 닿지 않도록 손으로 머리카락을 잡아넘기며 하티아를 쳐다보았다.
“어디, 마음에 드는 여자는 없고?”
“바쁘게 살다 보니…… 여자에게 관심을 둘 짬도 없었습니다.”
“저런, 그러면 역시 그쪽 취향이었나?”
“폐, 폐하……”
“아아, 미안. 태사와 동년배인 그대를 이렇게 놀려 버릇 하는 것도 좋지 않기는 한데.”
혈 관을 바로 지져 지혈한 덕분에, 피는 더이상 돋지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상처는 꿰매어야 했다. 다스카의 몸에는 흉터가 많았다. 검에 베인 상처, 폭발물의 파편에 찢긴 상처, 마법에 다치고 눌어붙은 상처, 불에 데인 흉터까지. 치명상도 많았지만, 웬만한 재생조치로도 여자의 몸에 흉터로 남아버릴 상처는 더 많았다. 그런데다가, 의학에도 조예가 깊어 급하면 그를 대신하여 다스카의 상처를 돌보아 온 저 하마드리스가, 대체 어쩌자고 상처들을 다 이렇게 무식하게 때워 놓았는지. 그가 손 대어놓은 상처 치고 불그레한 얼룩으로 남지 않은 자국이 없으니, 이렇게 웃옷을 벗고, 얇은 환의 한 장만을 걸친 채 등과 가슴을 그대로 드러낸 다스카를 볼 때마다 하티아는 기가막힐 뿐이었다.
“조직재생술을 받아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그럴 필요가 있나?”
“물론 한동안 면역 쪽으로 신경을 써야 합니다만, 피부를 재생하는 정도라면 황족의 민감한 체질로도 무리가 없을 줄 압니다.”
“아니, 그러니까 말이야. 손가락이라도 떨어져 나갔다면 모를까, 피부를 왜.”
“폐하.”
“지우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그대는 내가 이상하다고 말하겠지.”
다스카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대도 유미디아 대군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잖나. 아니, 유미디아 대군의 주치의였지. 그런 그대가 모를 리 없겠지. 그런 자국들이, 내가 싸우고 또한 살아남아 온 증거라는 것을.”
유 미디아 대군, 이라는 이름을 힘주어 발음하는 다스카 대제의 입매는, 꼭 젊었을 때의 그녀를 닮았다. 하나하나 두고 보면 닮은 구석이라고는 없는데도, 어째서인지 대제는 유미디아 대군을 많이 닮았다. 친어머니인 선황보다도. 대제는, 흉터는 둘째치고 제대로 상처를 곱게 아물리려면 아직 몇 땀을 더 떠야 하는 옆구리의 상처는 아랑곳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묻은 환의는 벗어두고, 그녀는 가벼운 화농이라도 치료하고 일어난 양 제 손으로 드레싱을 붙이고 속저고리를 집어들었다.
“폐하.”
“회의 있다고 했는데 뜸을 들이니까.”
“아니, 제발 다시 자리에 누우십시오. 자꾸 그러시니, 황군 폐하께서도 늘 근심이시지 않습니까.”
“난 분명히 회의 있다고 했어. 시간 다 되었다. 어차피 소작은 다 했잖아. 어린애도 아니고.”
“어린애인게 문제가 아닙니다. 폐하의 옥체에 대해 신이 몇 번을 더 말씀드려야 아시겠습니까.”
“살 날도 길지 않을 거고, 후사도 없을 거다. 그러니 내가 그대에게, 나를 대신하여 유미디아 대군의 자손을 볼 태를 은밀히 알아보라는 명령도 하였겠지. 그 일에 대해서는 당연히, 아직도 손도 대지 않았을 테고.”
“황군 폐하께 무어라 설명하실 것입니까.”
“다음 황제가 유미디아 대군의 자손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으니, 태를 빌려줄 사람을 찾는 것 뿐이다.”
다스카는 겉저고리를 걸치며 고집스럽게 눈을 떴다.
“그 역시도, 마땅히 그대가 알아보아야 할 일일텐데?”
“폐하.”
“내가 관심 두는 것은, 최적해 뿐이다.”
저고리의 고름을 단단히 매고, 다스카는 전포를 꿰어 입었다. 검은, 금사로 수가 놓인 전포를 입고 허리띠를 매었다. 젊은 대제는 남의 도움 없이 혼자 재빠르게 머리를 땋아늘이고, 그 끝을 가느다란 댕기로 야무지게 묶어내렸다.
“그대도 알고 있는 누군가도 그러했듯이.”
“대군 전하는 구하지 못하였습니다만, 폐하만은 반드시 구할 것입니다.”
“내 스승님도 그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하티아 크로마.”
다스카는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곁에 놓아 둔 그녀의 관을 집어들었다. 관을 쓰려다 말고, 다스카는 진통제를 꺼내어 물 없이 씹어 삼키며 하티아를 바라보았다.
” 유미디아 대군을 보듯 나를 보는 사람들. 그래, 지금은 뭐……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지기도 했고, 그대도, 내 스승님도, 대내상도, 이제는 모두 내가 어떻게 한 사람 몫은 겨우 해 낸다고 보아 주는 것 같으니 고맙지.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바라는 것은 최적해다. 오히려 그대들이 나를 위해 그리 간언해야 옳은 게 아닌가? 내가, 내 손으로 나를 대신할 여자를 찾아내러 다니는 수고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일찍 세상 떠나면 황군 또한 어리석은 짓을 하려 들 것이기에, 이 나라의 후계 구도 뿐 아니라 황군을 위해서라도 내게는 그다지 선택지가 많은 게 아니야. 뭐, 평생을 황실에서 봉직해 온 그대들도, 아직도 익숙해지지 못하는 것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지.”
“폐하.”
“그래, 그래서 유미디아 아라스 대군이 죄 많은 분이라는 것이겠지. 어떤가, 하티아. 그렇지 않나?”
황금새의 전설
외전, 황금새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