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키싱유에 아는 사람 있다고 하셨죠?”
“아, 예……”
“누구예요?”
“……그게요.”
“내가 맞히면, 이거 쐬주 마 선생이 쏘는 겁니다. 예?”
멋대로 내기를 걸어버리고, 이 선생은 손목을 휙 꺾어 소줏잔을 비우며 으하하, 호걸스레 웃었다.
“누님 아니에요? 저주받은 오른손, 마영진 기자.”
“그, 그걸!”
……그렇다니까, 이 남자. 기자 이름이야 판권 보고 찾아봤구나 하겠지만, 기자마다 붙어있는 괴이한 별명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건 틀림없이.
정기구독자. 아니, 매달 배달받아 보는 것은 아니더라도, 다달이 25일 기다렸다가 서점에서 사들고 퇴근하는 뭐 그런 인물 말이다. 그쯤은 되어야 알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둠의 왼손”, “저주받은 오른손”, “야성의 채찍녀” 등등 뭔가 샤방샤방한 순정만화와는 십리 떨어진 저 조폭두목님같은 닉네임을 구분까지 해가면서 알지. 그런데다 더 큰 문제는 이거.
“근데 그런 귀여운 별명은 어떻게 지은 거래요.”
“귀엽……”
만화가들이 슬슬 그렇게 후기에 등장시키던 것이, 나중에 아예 키싱유에서 이벤트를 한 거다. 기자 별명 붙여주기 이벤트. 물론 뭐 처음에 그렇게 후기만화에 등장시켜서 우리 누나를 저주받은 오른손이니 마감신권이니 그렇게 부르던 몇몇 만화가들은 물론 유명을 달리한 것은 아니지만, 심심하면 잡지에 후기컷을 내놓으며 사실은 마감 째고 도망가고 싶었는데 ‘저주받은 오른손’ 마영진 기자가 돌려차기로 위협하는 바람에 마감을 지키게 되었다며 이 모든 영광을 우리 누나에게 돌리는 바람에 말이다. 우리 누나는 이제 이 바닥에서는 시집도 못 가게 되었단 말이다. 으악.
“독자 이벤트라나 뭐라나…… 독자엽서 집계하더니 그렇게 별명이 붙었다고 그러던데요.”
“오오, 멋진데.”
“근데 만화가 챙기는 독자는 많아도, 뭐 기자를 챙겨요.”
“왜요! 옛날에 그 박무직씨 만화에 나오고 그랬잖아요. 안드로이드 강 같은……”
“그건 그 사람이 아예 별명을 붙였죠.”
“그 무일푼 만화교실. 봤어요? 마 선생은 그때 어렸을 텐데.”
“누나가 만화기자….. 아니, 그때는 만화가 지망생이었는데 못 봤겠어요? 집에 그 책 있어요. 그러고 보면 참, 만화가가 자기 데뷔작으로 만화교실 만화를 그리다니 그것도 참 놀랄 노 자이지만.”
“뭐야, 그게 진짜 첫작이라고요?”
“그렇다니까요. 아니 뭐, 단편은 그 전에도 있었겠지만 그 뭐냐…… 처음 한 연재가 그거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그 김준범 선생님이 그러셨다는 거예요. 한국 만화사상 가장 충격적인 데뷔작이라고.”
“으하하하, 그럴 만 하네. 그럴 만 해!”
자, 여기서 미성년자는 아직 알면 좀 곤란하고 어른들은 아마 고개를 끄덕끄덕할 이야기가 있는데, 자고로 술이 술술 넘어갈 때에는 말을 아껴야 하는 법. 불행히도 군대도 안 갖다온 나는 그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삼겹살에 상추를 싸서, 음? 아니, 상추에 삼겹살을 싸서 먹으며 술술술 넘어가는 술을 즐기며 역시 술술 만화에 대한 나의, 차곡차곡 쌓여서 퇴적암이 되다 못해 노력과 근성과 섭씨 5천도에 달하는 정열……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지만 하여간 그 비슷한 것이 더해져 변성암이 되고 남을 지경에 이르는 하여간 그런 것을 술술 불기 시작했으니.
“쥬시카 에도니하고 그리스 밀러 나오는 데 까지는 좋았어요, 복수의 갈채였나? 근데 그 이후에, 연극학교 들어가는 데 부터는 이거 참 알 수가 없어서……”
“오, 갈채. 갈채 본 거야?”
“예에…… 샨 피에슬리도 나중에 이상하게 죽어버리고. 그냥 그리스 밀러에서 끝내지 무슨……”
“아니야, 아니야. 이런 건 처음인데, 김영숙의 갈채를 본 남자를 만나다니!”
“아니 그거야 취향이니까 존중……”
“아니야, 이거 정말 즐거운데? 으하하, 내 마 선생을 사나이로 인정하지.”
“그런 것으로 사나이 인증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여기 있지, 뭐 어때서!”
라든가.
“그거 봤어요? 악의 꽃? 캬아, 어쨌건 제대로 근친물이잖아요. 그것도 쌍둥이.”
같이 할 소리 못할 소리 다 하고 있거나.
“토노 것은 칼바니아도 그렇고 치키타 구구도 그렇고. 다 좋다니까.”
“치키타 구구 이번에 새로 나오잖아요.”
“오오, 나도 들었는데. 마 선생은 구판 다 갖고 있어?”
“뭐, 집에 만화기자가 있다보니……”
“으하하, 좋은데. 언제 마 선생 집에 놀러가도 돼?”
“오는 것은 좋은데, 만화책은 다 누나 방에 있다고요.”
“가는 김에 누님도 소개시켜주고. 안되나?”
“아이쿠, 좋지요. 노처녀 못 치워서 큰일이었는데. 만화책 싸줄테니 우리 누나까지 데리고 가요, 가.”
뭐 이런 실없는 소리에다가. 그러다 보니 이 선생은, 어느새 술잔이 아니라 소주병째 나발을 불며 한탄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난 말이야, 운동 하는데다 이렇게 뭐, 산적두목같은 등빨이다 보니까, 이러고 순정만화 읽고 있으면 정말 이게 아닌거야. 아니, 그래서 나는 순정만화가 좋은데, 내가 만화책 보고 있으면 다들 읽을게 없어서 저런거 읽나보다 하고, 아니, 내가 불의 검을 읽으면서 그 산마로를 그리워하는 아라 때문에 가슴을 쥐어뜯고 있는데 와서는 얼마나 재미없으면 그렇게 가슴을 쥐어뜯고 있느냐고, 그러면서 럭키짱이니 대털이니, 그런걸 떠다 안겨주는 거야.”
“저런.”
“마 선생은 그래도, 순정만화 들고 있어도 좀 어울리게나 생겼지. 아니, 거 우락부락한 남자라서 미안하다고 할 수도 없고. 순정만화 보는 게 무슨 죄야.”
글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선생은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내 생각은 달랐다. 그냥, 남자답게 생긴 사람이 순정이며 야오이를 들고 읽고 있으면 그냥 호기심에 보나보나 할 수도 있겠지만.
“비리비리하게 생겼다고 순정만화 마음대로 볼 수 있는게 아니에요. 자칫 잘못하다가는. 아니, 이야기 못 들었어요?”
“무슨 이야기.”
“나 처음 발령받았는데, 그날 그 소리 들은 거예요. 선생님 호모 아니냐고.”
“우와, 누구야? 누가 그런 소리를!”
“연지요.”
“이연지? 나이스. 굿잡. 오오오.”
“오오오는 뭡니까.”
“뭐는 뭐예요. 학교 최고의 미소녀랑! 점심시간에도 같이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이 선생인 내 손을 덥석 잡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난 이거 뭐, 교회가 안되면 절도 괜찮다는 말에 10년 다니던 교회 때려치우고 절로 갈아탔는데, 그래도 안생겨요.”
“뭐가요.”
“여친요! 절에는 여자가 많다더니, 가보니까 아줌마 뿐이고. 역시 천주교로 갈아타야 하나, 젠장.”
역시, 이바닥은 지옥이야. 술에 취해 아스팔트에 운명적 첫키스를 바치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 생각은, 역시 그런 것이었다.
그와 그녀의 화학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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