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동 외전 : 엘리베이터를 탄 사나이(3)
문이 열렸다.
비단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이 등 뒤에서 들렸다. 동장은 뒤를 돌아보았다. 반다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시커먼 연기 같은 것이, 그의 할머니, 김명화 여사를 감싸고 있었다.
아니, 그냥 멍하니 있다가 붙잡힌게 아니다. 그를 감싸려다 대신 잡힌 것이다. 동장은 급한대로 약지를 물어뜯었다. 살갗이 벗겨지며 피 한두 방울이 배어나왔다. 동장은 손을 내밀었다. 김 여사는 손을 뻗었다. 반투명하게 뒤가 비치던 김 여사의 살갗에 동장의 핏방울이 닿자, 그녀의 손은 실체가 되었다.
“C는 평면 R2 위의 조각적 미분가능(piecewise smooth)한 단순한 닫힌 곡선(simple closed curve)이라고 하고, D는 C를 경계로 하는 영역이라고 할 때……!”
동장은 케빈-스토크스 정리의 특수한 케이스인 그린 정리를 외치며 완드를 휘둘러, 그 끝에 모인 힘을 그대로 그림자를 향해 찔러넣었다. 손을 뻗어, 김 여사의 손을 맞잡아 당겼다. 김 여사는 동장의 가슴에 푹 파묻히며 앞으로 넘어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동장은 김 여사를 품에 안은 채 벽 쪽으로 굴렀다.
“뭐야, 저건……”
“하지 말라고 했잖느냐.”
김 여사가 고개를 들었다. 동장은 비명을 질렀다.
“하, 할머니!!!!!! 옷이 그게 뭐예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미소녀가 홀랑 벗고 품에 안겨 있는 상황이야 물건너 일본산 애니메이션, 또는 라이트노벨, 또는 애니메이션, 아니 아예 하드하게 야애니 같은 것만 찾아봐도 쉽게 굴러다니는 장면이긴 했지만, 그게 이미 수십 년 전에 돌아가신 자신의 증조할머니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벗어라.”
“어, 어쩌라고요! 저랑 할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사이……”
“지금 나보고 이 차림으로 다니라는 거냐!”
김 여사는 동장의 볼을 쫙 잡아당겼다. 동장은 울먹거리며 입고 있던, 한여름 관공서 에어컨 사용 자제로 대표되는 문자 그대로 쿨비즈의 상징 반팔 와이셔츠를 벗었다. 김 여사는 맨몸에 흰 와이셔츠를 걸치고, 동장의 벨트를 빼앗아 허리에 묶었다. 다행히도, 김 여사의 체구가 작은 덕분에 허리를 한참 지나 허벅지까지 다 가려지기는 했지만, 이건 뭐,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면구스러웠다.
“……어떻게 된 거예요.”
“내가 이래서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어떻게 된 건지 말씀은 해 보세요.”
“몰라서 묻는거냐.”
동장은 잠시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두운 복도에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제외하면 불빛 한 점 없었다. 아무 사무실이나 문을 열고 들어가 창 밖을 내다보았다. 새벽 두 시, 밤은 깊어 하늘도 짙은 어둠이 뒤덮고 있을 시각인데, 꺼먹한 하늘 아래 새방 지평선이 불그레한 것이 꼭 동트기 직전처럼 스산하다.
“광화문이……”
하지만 그보다 더 섬뜩한 것은, 거리 풍경이었다.
달조차 뜨지 않은 하늘 아래, 드문드문 가로등이 켜진 것을 제외하면, 광화문 인근의 건물들은 불빛 한 점 없이 죽어 있었다. 그 흔한 교회 십자가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북망산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이라고,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 정도는, 신을 보고 느끼며 범인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힘을 쓰는 그가 모를 리 없는 일이었다. 그저 죽어 있을 뿐, 숨쉬지 않을 뿐, 바깥의 세상과 한 점 다름이 없어, 새로이 지은 광화문에 거대한 세종대왕 상, 밤이면 잠잠한, 도로 한 가운데 놓인 저 광장의 분수들까지도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어둠 사이를, 보이지 않으나 느껴지는 것들이 천천히 걷고 있다.
“……엘리베이터로 연결되는 세계라는 게, 저승이었습니까.”
죽어 돌아가는 그곳에는 천국도 지옥도 없으니, 그 중 깨달은 자는 마치 신선과 같이 신격으로 화하거나 그 윗 길의 하늘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이승과 꼭 같은 곳에서 죽은 자들끼리의 삶을 또다시 이어가는 법이다. 더러는 여기 머무르고, 더러는 이곳에서의 삶 역시 권태롭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윤회 속으로 돌아가며, 더러는 산 자들의 세상에 두고 온 한이 깊어, 이곳이 있음을 알면서도 차마 찾아오지 못하였다.
허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죽었어도 이곳에 오지 못하는 이는 있어도, 산 자가 여기 오는 것은 범해서는 안 될 금기라는 것. 동장은 자신이 어떤 금기를 범했는지 절감했다. 돌아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그래서 내, 어리석인 짓 따위 하지 말라고 했던 거다.”
김 여사가 탄식했다.
“어느 할미가, 제 손자가 제 발로 저승에 가는 것을……”
“말씀해 주세요, 할머니.”
산 사람처럼 김 여사의 어깨가 손에 잡혔다. 동장은 입이 바싹 말랐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너무 잘 알아서 큰일이지. 몸을 잃은 김 여사의 영체가 아닌 실체가 이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자신이 있어서는 안 될 세상에 와 버렸다는 증거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승과 저승의 문이 열리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거죠?”
“네가 몰라서 그리 묻는게냐.”
동장은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지난 번, 청계천에서 그 아래 또아리를 틀고 있던 지하국의 머리 여럿 달린 괴물이 머리를 내어밀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일이 벌어질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뒤섞이고, 아직 명부에 적힌 때에 이르지 못한 이들이 명부로 끌려가는 일이 이어지며,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을 희롱하고, 산 자들은 죽은 자들을 두려워하며 무서운 혼란이 찾아들고 말 거다. 퇴마과가 있다고는 하나, 이정도로 큰 틈이 벌어진다면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동장은 완드를 고쳐 쥐었다.
“막야아 해요.”
“안 된다.”
“막아야 해요. 인터넷에 떠도는 그런 아이들 장난같은 주문만으로도 다른 세계에 넘어와 버렸어요. 원래 할머니 닮아서 영감은 강한데다 강하고 모셔야 할 분들이 제 등 뒤에서 저를 지켜주시는 바람에 본의아니게 영적인 일들에 휘말리는 경우도 살면서 적지 않았지만, 이런 일이 이렇게 간단히 벌어지는 것을 보면.”
“이미 몇 명인가는 넘어왔다는 뜻이겠지…… 내, 그렇지 않아도 이 문이 너무 쉽게 열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
“……반 선생은.”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반다인이었으니까, 5층에서 문이 열리고 여자가 탔는데도 믿었다. 차라리 월하였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누구였더라도. 다인이 5층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반 선생이 놀라겠는데요.”
“월하 걱정은 안 하고?”
“하하…… 그러게요.”
동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귓것들의 세계를 엿보며 살아왔다고 해도.
두렵다. 살아있는 자들의 세계에서도 내 세상이라, 제대로 두 발을 땅에 듣고 산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월하라는, 그 사랑스러운 아가씨가 여고생에서 동직원이 되어 돌아온 뒤에야, 그 동사무소는 제대로 된 중력을 그에게 부여했다. 그가 있어도 좋을 곳들은 있으되, 여기에 언제까지나 있고 싶다고는 느낌을 받았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다르다는 것이,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이, 중2병적인 그런 고통이 아니라 정말 실존의 문제로 그를 늘 옭죄어 왔다. 자꾸만 보이는 죽은 이들의 눈빛에 짓눌려 차라리 목숨을 끊으려 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 죽었다면, 이 허무한 세계 속에서 길을 잃고, 여전히 고통받고 있었겠지. 지금은 다르다. 한 번 죽은 이의 눈에는 그래도 여전히 살 만한 세상일 지 모르겠으나, 아직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살아있는 이에게는 숫자로만 이루어진 듯한 차가운 잿빛 세상을 내려다보며, 동장은 어금니를 살짝 깨물었다.
“아까 그 반다인의 형상을 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지하여장군…… 이 아닙니까.”
“그래, 저승의 문지기, 무장승.”
김 여사는 동장의 손목을 살짝 붙잡으며 중얼거렸다.
“산 자가 넘어오는 것도 황당한데, 이미 죽은 이가 대신이랍시고 산 사람에게 붙어 있으니 트집을 잡힐 만도 하였지.”
“할머니.”
“왜.”
“아직은 좀 더 있어 주셔야 해요.”
“왜, 내가 고 년에게 붙잡힐까봐서.”
김 여사는 키득거렸다.
“야나기 시로오같은 독랄한 놈도, 살아서는 나를 붙잡지 못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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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을 들여다보는데,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10층으로 올라갔다. 이 아저씨가 못된 버릇만 늘어갖고는, 장난을 치나. 혀끝으로 독설이 쏟아지려는 찰나, 반다인은 적어도 자신이 아는 한 이 남자는 이런 문제로 사람을 놀린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문득 떠올렸다. 이렇게 깨끗한데, 바로 몇초 전 사람-S.A.L-U에서 거슬리는 주파수가 잡혔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인은 버튼을 눌러 10층에 머물러 있는 엘리베이터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그 구석에 청테이프로 붙인 회로와 캠코더를 잡아뜯었다.
휴대폰도 두고 갔는데. 어디 다른 데서 내려서 사무실로 돌아간 것은 아닐까. 일단 회로와 캠코더를 조사해보기 위해 사무실로 가져오는 내내, 마음이 찜찜했다. 캠코더를 켜 보는데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충전기에 꽂아도 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 충전 LED가 나갔거나 아니면 아예 고장이 났거나, 둘 중 하나였다. 메모리를 뽑아 컴퓨터에 연결했다. 회로도 분석시스템에 연결해 보았다. 회로는 끊어져 있었다. 무슨 일이야. 기분이 더러웠다. 다인은 망가진 회로를 만지작거리며, 모니터에 떠오른 영상을 들여다보았다.
그 동영상에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5층에서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동장의 모습이 보였다. 문이 열렸고, 그 안으로 들어서는 것은 분명한 반다인, 그녀였다. 그 텅 빈 엘리베이터를 들여다 보며 인상을 쓰던 자신이, 그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동장은 무언가 그녀에게 말을 거는 듯 했다.
그리고 동영상은 거기까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