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해 주셨던 서야링님의 요청이랄까요. 뒤늦게나마 월하동 외전 한 편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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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마세요, 과장님. 대체 뭐 하시는 거예요?”
짚을 비비고 진흙으로 붙이고 묶어 인형을 만들었다. 인형의 뱃속에는, 지난번 동사무소에서 가져왔던 티백 말린 것을 넣었다. 그 여자의 손이 닿은 것 중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그것 뿐이었으니까. 그나마도 먹고난 녹차 티백을 챙겨온다고 하면 “아니 일본의 경제가 어떻길래”하는 헛소리를 할까 싶어 몰래 가져오느라 고생도 많았다. 많았는데.
“미야자와가 간섭할 일이 아니야.”
촉망받는 엘리트, 아베 소이치로 과장이 자신의 커리어와는 상관없이 늘 뻘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알았지만, 아무래도 지금 하는 짓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아무리 일반행정직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이쪽 바닥의 일을 보다 보면 보고 듣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과장님!”
염매법이다. 저주의 인형을 만들어 상대를 저주하는. 그 사실을 깨달은 히로코는 어깨로 밀치며 들어와, 책상 위에 놓인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짚 인형을 집어들려 했다.
“손 대지 마!”
아베 과장은 거칠게 히로코의 팔을 붙잡아 비틀었다.
“손 대지 마, 미야자와!”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이건.”
짚 인형의 뱃속에 들어있는 것은, 말린 녹차 티백, 그리고.
“이월하 선생…… 이에요? 지금 이 사진?”
“……”
“과장님!”
“아무 말도 하지 마. 조금이라도 내 마음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가문의 명예, 사회적 지위, 재산, 능력, 학벌, 인맥, 그리고 사랑. 언제나 그랬다.
그래, 단 하나를 제외하고는.
“아니, 동장님 좋아하시는 것 알아요. 동장님이 이월하 선생 좋아하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갑자기 왜 이러시는데요. 이런다고 뭐가 달라져요? 과장님!”
“만지지 마.”
“과장님!”
아베 과장은, 짚 인형을 마저 묶어 배를 아물리고, 가슴과 팔다리에 부적을 감아 삼끈으로 동여매었다. 그리고는 만들다 만 인형 하나를 더 꺼내어, 동장의 사진을 잘게 찢어넣었다.
“강력한 저주의 주력을 불어넣었다. 만지지 마. 자네에게도 해가 가니까.”
“이런 일은 그만두세요. 지금!”
“……동장이 한국에 돌아왔다.”
아베 소이치로 과장은 목쉰 소리로 중얼거렸다.
“상견례 말이야. 어제 그걸 한 모양이더군. 정말로 결혼해버리려고.”
“그러면 그냥 곱게 동장님의 행복을 빌어주세요. 아니, 잠깐. 이월하 선생은 연적이니 그렇다고 치고, 왜 동장님까지 세트로 저주하시는 겁니까!”
“……”
“저주라는 게 어떤 건지 아시잖아요!”
“그래. 남을 저주하면 무덤이 두 개라고들 하지.”
아베 과장은 동장의 제웅을 봉하고, 다시 팔다리에 부적을 감아 묶으며 싸늘하게 대답했다.
“둘을 저주하니, 무덤은 틀림없이 세 개가 될 거야.”
“과장님……”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동장은 내 것이 될 수 없겠지. 신이여, 나를 지옥으로……”
다 만들어진, 무려 저주부적까지 둘둘 말아감은 제웅에 입을 맞추며 아베 과장은 중얼거렸다. 그 모습은 어쩐지 비통해보였지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반드시…… 하늘 나라로.”
“저기 과장님. 그러면 동장님은 어차피 이월하 선생님 게 되잖아요. 둘이 천국으로 가고 과장님은 지옥으로 가시면. 여전히 커플……”
동시에 이런 문제를 내포하기도 한 것이라서.
“모르셨어요?”
“……젠장!”
동경대 나온 엘리트 출신에 1종 커리어인 이 남자, 이런 멍청한 짓거리도 밥먹듯이 해 대더라는 것이 참 문제다. 문제. 그런데다가.
“아직 휴가 안 썼지? 한국으로 가야겠어!”
“혼자 다녀오세요.”
“왜?”
“……저도 바쁘다고요.”
“시끄러워. 가자구. 가는거다.”
“과장님!”
아베 소이치로는 밀폐용기에 인형 두 마리를 집어넣고, 삼줄로 둘둘 감고 다시 붉은 끈으로 동여맨 뒤 부적까지 몇 장을 끼운 뒤에야 뽁뽁이로 싸고 상자에 넣어 히로코에게 건네주었다. 위험하긴 위험한 물건인 모양인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고로, 상사를 잘 만나야 인생이 편하다고 했던 것이다.
* * * * * * * * * * * * * * * * * *
스튜디오 촬영이란 자고로 대부분의 남자들이 대체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지 이해는 못하지만서도 신부를 위해 꾹 참고 동참해주는 중노동으로, 다들 똑같은 포즈로 얼굴만 바꿔가며 찍는 것 같은데다 비싸기는 더럽게 비싼 돈지랄이라는 것이지만, 동장과 월하의 경우는 좀 달랐다. 장소와 드레스, 그리고 동장이 골라 온 코스프레 의상은 준비했지만, 촬영은 동장의 지인들이 여럿 따라와 돌아가면서 찍어주기로 했고 – 그러니까 거의, 코스프레 촬영회 번모가 된 셈이다 – 편집은 반다인이 축의금 대신 해 주기로 하였으니, 적어도 남들하고 똑같은 촬영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잠깐만요, 동장님. 이거 남자 옷이잖아요!”
……그렇다니까?
“남자 옷이 아니라 소년의 옷이죠.”
“그게 그거죠!”
“화이트 베이스 시절 아무로 레이의 옷이랄까. 샤아랑 어울리잖아요.”
“여자 캐릭터 없었어요? 그, 있잖아요……”
“라라아? 저런, 안돼요. 미인박명이라서. 바로 죽잖아요.”
“……말고요, 노랑머리.”
“세이라 마스? 걘 샤아 여동생이라고요. 물론 뭐, 여동생 모에하는 사람도 있긴 있지만 샤아 하면 역시 아무로, 오혜성에게는 마동탁!”
“라이벌이요?”
“아니, 커플요. 자, 예쁘게 찍어줘요.”
턱시도가면과 세일러문, 샤아와 아무로, 연과 무휼, 히카루와 미사, 로우드 학교 교복까지 어디서 구해다 놓고 찍고 있으려니 대체 여기서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웨딩촬영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보통은 신부는 신이 나서 찍고 있고 신랑은 배경 노릇하느라 바쁘다는 스튜디오 촬영에서, 정작 산이 난 것은 동장이었으니.
“동장님 혼자 찍어요! 나 안 해!”
“그러지 말고, 언제 우리가 이렇게 또 본격적으로 찍어보고 그러겠어요. 그래도 드레스 비슷한 것도 넣자고 이것도 골라왔는데, 짜잔~.”
그러고 보니 하늘색에 하늘하늘하고 가슴쪽으로는 드레이프가 진 데다 아래로 금박과 레이스를 박은 것이 드레스가 맞긴 맞는데.
“……이거 무슨 만화예요?”
“설마 지금 몰라서 묻는 거예요? 가발도 이렇게 같이 빌려왔는데?”
“뭔데요?”
“……오스칼 여장한거요. 여기 스튜디오도 그렇고 예식장도 그렇고, 가까이서 보면 키치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지만 사진으로 찍어놓으면 나름 화려하잖아요. 이런데서 코스하고 찍어보면 괜찮겠다 싶어서 빌려왔어요.”
“……전 페르젠 느끼해서 싫은데요.”
“아, 그런가? 하지만 여기서 앙드레는 안 어울리잖아요. 어쩌죠.”
“그래도 드레스는 마음에 드니까 그냥 이건 혼자 찍을래요. 그래도 되죠?”
“아, 뭐……”
생각해 보면.
그래도 예식장에 가면라이더 코스프레를 하고 들어가겠다거나 하는 뻘소리는 안 해서 정말 다행이다 싶긴 했다. 뭐, 기껏 신랑용으로 골라놓은 턱시도는 척 보더니 대낮에 턱시도라니 마음에 안 든다고 투덜거려 놓아서 모닝코트로 바꾸기는 했지만. 그래도 참, 사람이 변하질 않는다. 한결같은 그 모습에서는, 1년이나 외국에 가 있던 사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아요.”
폴라로이드로 찍은, 그나마 제대로 신랑 신부 흉내 내고 찍은 사진을 소중하게 지갑에 넣고 들여다보며 동장은 해죽 웃었다.
“이월하 선생은 믿어져요?”
“뭔가 좀 심히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느낌이 들지만요오……”
“싫어요?”
“싫은 건 아닌데, 어째서 어른들이 우리보다 더 좋아하는 건데요?”
“그거야 간단하죠. 우리 집 어른들이야 형님부터 시작해서, 내가 호모나 고자가 아닌가 걱정하시고 그러셨는데.”
“……”
“그런데 좋아하는 여자 있다고 하니까 정말, 말로는 못 해요. 그리고 이월하 선생 댁도……”
“그만.”
월하는 고개를 설레설레설레 저었다. 대체, 난 아직 파릇파릇파릇한 20대인데 이게 무슨 일이람 싶을 만큼, 가족들은 동장과의 결혼을 반가워 해 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신랑감 본인은 30세에 사무관이고, 서기관 승진을 앞둔 채 일단 국비 유학중인 엘리트. 그런데다 형님은 존경받는 의사. 어디로 봐도 이만한 혼처를 또 만나기가 쉽지 않아 보였던 것이었다.
“……다들 내가 시집 잘 간 다고 하니까 속상하다고요.”
“뭘 그래요, 이월하 선생이 나 구제해 준 거 내가 알고 우리 형님 형수님이 알고, 우리 할머니도 아시는데, 뭘.”
“그래도요.”
결혼을 앞둔 두 연인….. 이라고 부르기는 참으로 뭐랄까 구렁이 담 넘어가듯 결혼이 진행되어 버린 것은 틀림없지만, 어쨌건 두 사람은 날이 더운 줄도 모르고 손을 잡고 걸으며 소근거렸다. 8월의 밤 공기는 뜨거웠다. 하루종일 스튜디오 촬영에 시달렸다보니 진이 빠지고 피곤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기뻤다.
“……키스해도 괜찮아요?”
“대체 동장님은 언제까지 그걸 물어보고 할 거예요?!”
“아, 미안해요.”
“……저기, 학교 운동장 가서 하면.”
“아, 예. 그래요. 가죠.”
그렇게 닭살을 떨고 있는 두 사람을, 어깨를 떨며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정말 한심하군. 어쩌면 사람이 변하질 않아.”
바로 반다인이었다.
“뭐, 좋은 때지 않습니까.”
“좋긴 뭐가 좋아?!”
“저는 부럽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마음이 통하고 사랑하게 되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시끄러워.”
다인은 슬며시 낯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넌 안 그래서 지랄이야?”
“……”
“왜?”
“그건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다르긴 뭐가 달라. 주말부부나 마찬가지인데. 어쨌건, 오늘 아베 소이치로와 미야자와가 입국했으니 틀림없이 이 쪽으로 올 거다. 동장님이야 어떻게 되건 상관없지만, 이월하 선생은 보호해 줘야지. 조용조용히 보고 있다가, 놈이 사고를 치면 넌 일단 이월하 선생부터 들고 튀어. 동장님 쪽은 내가 교섭을 해 볼 테니까.”
“아베 과장님이 노리시는 것은 이월하 선생님이 아니라 동장님이 아닙니까?”
“그거나 그거나.”
어둠 속으로 멀어져가는 월하와 동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인은 중얼거렸다.
“어쨌건 잘 부탁해. 여기는 사람-S.A.L-U를 인스톨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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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첫 키스를 했던 학교 운동장에서, 이번에는 타이어에 나란히 걸터앉아 조용히 입술을 겹치려는 바로 그 찰나였다.
“기다리고 있었다, 동장!”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 이 아니라 당연하게도 유창한 일본어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 곳에는 웬 락앤락을 신주단지 모시듯 끌어안은 아베 소이치로 과장과.
“저희 과장님이 또 폐를 끼치게 되어서 죄송합니다아……”
아무리 한국과 일본이 가까워도 그렇지, 반가 달자마자 그대로 오후 비행기로 한국으로 끌려오며 반쯤 넋이 나간 미야자와 히로코가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무슨 일로 여긴 또.”
“네놈이 결혼을 한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축의금 주러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이런 고마울 데가.”
“농담하지 마! 그럴 기분 아니니까. 미야쟈와, 물러서.”
히로코를 뒤로 밀어놓고, 아베는 이글이글 타는 듯한 눈으로 월하를 노려보았다. 동장은 월하의 앞으로 반 보 정도 몸을 내며 아베 과장을 쳐다보았다.
“아직도 사랑을 강요할 생각인겁니까? 그만둬요. 서로 피곤하잖습니까.”
“내가 누구의 자손인지 알고 있겠지.”
일세를 풍미하고 지금에까지 그 명성이 전해지는 위대한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의 자손이라는 사실에 늘 자부심을 갖고 있던 아베 소이치로는, 그대로 머리에 양초 두 개를 대고 묶더니 라이터도 없이 그 위에 불을 붙였다. 그의 손등 위로 선망한 오망성의 표시가 떠올랐다.
“그렇게 간절히 원했건만……”
“아베 소이치로 과장.”
“네 사랑 같은 것, 저주해 주마! 영원해!”
그의 양쪽 관자놀이 위로 팔뚝만한 초가 타고 있었다. 아베 과장은 부적을 떼고 삼끈을 자르고 밀폐용기를 열었다. 그 안에, 동장과 월하의 사진을 찢어넣고, 팔다리와 몸통에 부적을 감은 제웅 둘이 마치 한 쌍의 연인들처럼 가만히 포개어져 있었다.
“잘 봐라! 이게 네게 전하는 내 마음이다!”
나무에 대고, 두 제웅을 그대로 못박았다. 그 잔인한 모습에, 히로코는 신음하며 주저앉았다. 월하도 마찬가지였다. 월하는 잔뜩 겁에 질린 채 동장의 등에 매달렸다. 아베는 힘껏 망치를 휘둘러 제웅의 가슴을 말뚝으로 박고, 또 내리쳤다. 제웅의 몸통이 찢어지고, 그 안에 들어있던 것이 비어져 나오도록. 한참을 그렇게 못박은 뒤, 아베는 두 제웅을 거꾸로 매달았다.
“염매법입니까…… 뭐, 그 제웅을 제가 다시 가져가면 별 일이야 없겠지만.”
“시끄러워.”
아베는 거꾸로 매단 제웅의 머리를 송곳으로 찔러대다, 동장을 돌아보았다.
“어차피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당신 게 되는 게 뭐죠?”
“……”
“결혼 말입니까? 어차피 한국도 일본도 남자끼리의 결혼은 허용도 안 되는 나라인데. 그렇지 않으면, 하룻밤 질펀하게 보내는 것? 당신이 그동안 잠자리를 한 사람은 다 당신 것입니까? 대체 당신 게 되는 게 뭔데 그러는 겁니까?”
“……네놈 말 따위 듣고싶지 않아.”
아베는 제웅에 불을 붙였다. 두 제웅은 여전히 함께 포개어진 채, 회색빛 재를 남기며 타올랐다. 아베는 오망성이 떠오른 왼손을 하늘로 쳐들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강렬한 빛이 일었다.
“네놈 말 따위!”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바닥에 떨어진 제웅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갔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진짜로.”
“하늘을 향해 쐈다……”
아베의 눈은 붉어져 있었다. 그의 오만한 자존심이, 막 흘러넘치려는 눈물을 애써 붙들고 있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더라도…… 네가 여자였다면. 그랬다면 나는 ……”
“그랬다고 해도.”
동장은 아베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중얼거렸다.
“그랬다고 해도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
“미안합니다.”
“차라리 같이 죽어버리자. 그러면 되겠지. 어차피, 내 목숨도 길지는 않을 거다. 가장 강력한 비술로 너희들을 저주하였으니”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동장은 아베의 바로 코 앞까지 다가가,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바로 손을 들어 그의 관자놀이 위에서 불타고 있는 촛불을 껐다.
“지, 지금!”
“결계죠, 그 촛불이. 맞죠?”
“……”
“난 상관없어요.”
“내 음양도를 무시하는 거냐, 지금!”
“아니, 당신 할아버지의 명예도 알고, 당신도 훌륭한 음양사라는 것은 알고 있어요. 잘 알지만.”
동장은, 자신과 월하를 상징하는 그 제웅이 타들어간 재를 발로 짓이기며 대꾸했다.
“남을 저주 하면 무덤이 두 개, 그거야 일본에서나 통할 말이고. 남을 저주하면 세 배로 돌아오네 어쩌네 하는 것도 서양 이야기죠. 이 나라는 그런 것 없어요. 진짜로.”
“뭐야?”
“적어도 이 땅에서 한 방자이니만큼, 아마 부메랑같은 것은 없을 거예요. 아니 정말, 이 나라는 화성 연쇄살인사건 나니까 경찰들이, 그러니까 경찰서에서 사건 현장에다가 제웅을 만들어놓고 범인이라고 못박아놓고 그랬다니까요. 후환같은 것 없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얼마 안 남았을 리는 없고.”
“……이놈!”
“그리고, 독립운동하다 돌아가신 우리 증조할머니가 나와 이월하 선생을 지켜주시는데, 우리 할머니는 무섭다고요. 일본놈한테 지면 아마 증손자건 뭐건 날 그냥 안 둘 걸요? 그런 증조할머니가 내 대신으로 계신데, 이런 주술이 통할 것 같아요? 됐고, 축의금이나 챙겨줘요. 아, 오늘따라 베르사이유의 장미 삘이 강하게 나는데, 내 결혼식 오는 길에 베르바라 키즈 굿즈들좀 사다줄래요?”
“모든 주술에는 그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대체, 돌아오는 게 없다면 그 주술은!”
“이 땅에서 저주술은, 그저 당한 것을 돌려주고 싶다는 그 원망의 마음을 표출하는 방편일 뿐이니까요.”
동장은, 운동장 바닥에 주저앉은 아베 소이치로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거죠?”
“……”
“그렇다면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불행을 바라지 않는 거예요.”
“……”
아베 과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동장은 한숨을 쉬며, 어깨 너머로 월하를 슬쩍 돌아보았다. 미안해요. 동장은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아베 과장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다 그의 턱을 붙잡았다.
“지, 지금……!”
뭐, 그냥 자기 팔뚝에 자기가 뽀뽀하는 셈 치고 이마에 뽀뽀를 해준 것 뿐인데, 아베 과장의 반응은 격렬했다. 이 인간, 설마 지금까지 뽀뽀 한 번 안 해보고 살았나 싶을 만큼. 그 반응이 재미있어 동장은 한참동안 아베 과장을 들여다보았다. 아베 과장은 동장의 어깨를 붙잡은 채 그를 한참동안 노려보다가,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나의 단 하나의 사랑의 증표.”
“음?”
“……물러나겠다. 이대로.”
타다 남은 재가 운동장을 뒹굴었다. 은행나무에는 못 자국이 여전히 선명했다. 동장은 타이어에 걸터앉은 채, 멀어져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괜찮은 거예요?”
“괜찮아요. 저주술이라는 건 사실 암시에 가까운 거라서, 실제로 어떻게 효과가 일어나기보다는 암시때문에 사람이 잘못되고 하는 거니까.”
“예……”
“그건 그렇고, 대체 언제까지 숨어서 구경만 할 거죠?”
그제서야, 그 은행나무 꼭대기에 앉아 구경만 하고 있던 독각이 다인을 감싸안고 훌쩍 뛰어내렸다.
“뭡니까, 여기까지 일껏 와서는.”
“……딱히 도와주려고 온 것은 아니니까요. 혼자서도 잘 알아서 하시고. 근데, 남자한테 뽀뽀하는 건 느낌이 어때요?”
“가죽지갑이랑 하는 기분이에요. 됐고, 이월하 선생, 저기 반 선생도 왔는데 우리 2차 할까요?”
“2차면 뭘로 하시려고요.”
“왜, 전에 갔던 닭갈비 집이라든가. 아직 다 하잖아요.”
월하의 동사무소
아베 과장, 월하의 동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