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동장님께 보편타당한 경우라는 것을 바라는 것이 사치스런 생각이라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사정을 듣자마자, 반다인은 여기까지 나온 시간이 아깝다는 듯 얼마 전 새로 바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시원한 것 생각 없느냐는 말은, 이런 상황에서는 대개 맥주나 팥빙수를 의미하는게 아닌가 싶은데요.”
“뭘 그래요.”
동장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트위터를 켜고, 새로 올라온 글들을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아, 한심하기도 하지. 이 아저씨 이런 인간인 줄 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이 염천지절에 시원한 것 운운하는 말만 믿고 잽싸게 튀어나오다니. 어리석었다. 한 때의 감정이었다고는 하나 잠시나마 이 인간에게 호감을 가졌던 자신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집 앞에 매달린 가로등 전구가 나가도록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 싶어질 정도니, 뭐.
문제는 이 아저씨도 강적이라는 거다. 동장 역시 아이폰을 꺼내서 얼른 트위터에 접속하고는, 다인이 투덜거리는 말에 하나하나 RT를 달아대며 빙긋 웃었다.
“손끝이 오싹오싹하는 이런 경험,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정말로 그 엘리베이터 장난을 치실 생각이에요?”
다인이 고개를 들며 비아냥거렸다.
“어린애도 아니고.”
“어린애들이 하니까 더 무서운 거죠. 솔직하게 믿어버리건, 반신반의하면서도 그런 다른 세계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건.”
“경비아저씨는 안 무섭고요?”
“음, 그건…… 반 선생이 알아서 해 줘요.”
“여보세요.”
“여보세요가 아니라…… 이런 일 한두 번 해 보는 것도 아니잖아요.”
“동장님 아직 퇴마과에 정식으로 돌아오신 것 아니거든요?”
“아하하……”
“그러니까 아직은 제 상사도 아니고 제가 챙겨야 할 퇴마과 소속도 아니거든요? 알고는 계세요?”
“그러지 말고 좀 도와 줘요.”
에헷, 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것이, 여전히 소년같다. 벌써 서른 네 살이나 된, 아저씨도 이건 뭐 빼도박도 못할 문자 그대로의 아저씨인데.
“뭘 어떻게 도와달라는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그런 허황된 일을 두고.”
“허황된 일이긴 한데.”
동장은 아이폰을 집어넣었다.
” 기대든 소망이든, 간절한 마음으로 그걸 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건, 새로운 틈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 되거든요. 과장님 은퇴하실 무렵에, 청계천에서, 기억나죠? 대통령이 며칠 자리를 비운 것 뿐이었어요. 하지만 서울을 결계로 보호한 부작들이 망가지거나 부정을 타고 결계가 느슨해진 상태에서는, 그야말로 중심을 잡고 앉을 궁이 비는 것만으로도 그런 사고가 나는 거예요.”
“설마.”
“설마는 인류 역사상 제일 사람을 많이 잡은 존재일 거예요, 내 생각에는.”
동장은 가방에서, 손때 묻은 완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기계로 깎은 것이라고는 해도, 다인이 몇 번이나 같은 것을 만들어 주었다고는 해도, 영국으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들어 주었던 그것을 동장은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기계’죠.”
“사람-S.A.L-U를 쓰자는 말씀이시군요.”
“그래요. 이미 그 장난이 어느정도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면, 그 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더라도 이상할 게 없어요.”
“독각을 데리고 가세요.”
“혼자 오라고 했어요.”
“사람 혼자, 겠죠.”
“알고 있죠? 도깨비는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동장은 손을 들어, 다인의 뺨을 살짝 건드렸다. 다인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야기 들었어요. 내가 없는 사이에, 천신대감을 모시는 만신이 되었다고.”
“……별놈의 소문이 다 퍼진 모양이네요.”
“인간은 결혼했다가 이혼할 수도 있지만, 신을 모시는 것은 다른 일이에요, 반 선생.”
“……”
“반 선생은 혼자 나이들고 늙어가는데 독각은 그대로라고, 그렇게 생각할 것 없어요. 독각을 잃으면, 당신은 망가질 테니까. 그러니까 인간이 아닌 도깨비니까 험한 일에 내보내어도 된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알았어요?”
“……대체.”
다인은 고개를 숙였다. 가슴이 답답했다. 독각과, 다인에게 신을 내려준 박수칠 과장만이 아는 비밀. 가족들은 그러려니 하고, 쌍둥이 오빠인 다익만이 그 다인의 연인이라는 자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겨우 알고 있을 뿐인, 그런 비밀스럽고 부자연스러운 관계. 하지만 동장은, 그 스스로 내림굿을 받지 않고 그저 견디고 감당하며 살아가는 이 남자는 다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모두 다.
“울지 말고요. 왜 그래요. 사실 나도 귀찮아서 안 받아서 그렇지, 그건 정말 특별한 일이라고요.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괜찮아요. 하늘과 땅과 사람 사이에, 그 사이에 선 것이 만신이에요. 巫라는 글자 자체가, 그 뜻이라고 내가 말했잖아요.”
물론 그런 말을 들어 주었기 때문에, 이 일을 돕는 것은 아니었다.
그 런 개인적인 이야기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서포트하겠다고 나섰다면, 그건 인간 반다인의 자존심 문제다. 하지만 동장은 늘 장난처럼 말하면서도, 언제나 그 알맹이만은 진지한 사람이었다. 밤 늦은 시각이었지만 불이 훤한 정부청사, 그 구석 엘리베이터의 내부 회로에 사람-S.A.L-U 회로들을 설치하고, 사무실로 돌아가 새벽 2시까지 기다렸다.
“그립네요. 독각이 타 주던 커피가.”
다인이 타서 내놓은 멀건 커피를 홀짝이며 동장이 중얼거렸다.
“영국 가서도 가끔 생각나더라고요.”
“이월하 선생한테는 말씀 하시고 나오신 거죠?”
“아, 그게요.”
동장은 전원이 꺼진 아이폰을 다인의 책상 위에 밀어놓았다.
“알면 날 죽이려고 들 거예요.”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걱정하면 또 인상 쓸 거라고요. 나흘 뒤면 결혼식인데, 예비신부가 좋은 것만 보고 듣고 생각해야죠.”
“동장님.”
“말 안 하는 게 도와주는 거예요.”
동장은 웃었다. 시계는 벌써 새벽 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슬슬 가 보죠.”
방법은 알고 있었다. 1층, 4층, 2층, 6층, 2층, 10층, 5층. 그 순서대로 엘리베이터를 누르다 보면 5층에서 여자가 탄다고. 등 뒤가 근질거렸다.
“하지 마라.”
“왜요, 할머니.”
김명화 여사였다. 동장은 어깨 너머로 자신보다 어린 나이에 세상 떠난 할머니를 슬쩍 넘겨보며 미소지었다. 김 여사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하지 말라고 했어.”
“할머니께서 그리 말씀하시는 것 보니, 정말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네요.”
동장은 완드를 고쳐 쥐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해야 해요.”
“혼사 앞두고 무슨 짓이냐. 무슨 험한 꼴을 보려고.”
“저는요, 할머니.”
동장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반 선생은 5층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인간이 아닌 여자가 탄다는 그 곳, 그 여자에게 말을 걸면 안된다는 경고가 생각났다. 정말로 그런 여자가 있을까. 동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월하에게 했던 농담처럼 그 여자가 미인이기를 기대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억하시죠? 저 예전에 죽으려고 했던 것.”
“너.”
“전 그때 정말로, 제가 무엇이 되어야 할 지 몰랐어요.”
엘리베이터에 달린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그렇게 잘 생긴 것도, 실제로야 어떻든 똑똑해 보이는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서른 네 살 남자의 모습. 동장은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안경 너머로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가 웃고 있었다.
“어디에 마음을 붙여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외로웠어요.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도 힘들었고, 남들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이렇게 답이 보이고 지름길이 보이는데, 그걸 왜 모르는지, 결국은 내가 말한 대로 하게 되면서 왜, 그렇게 고집들을 부리는지. 하지만 결국 제가 말한 대로 하면서도, 제가 그 말을 그 전에 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죠. 사람들이 보는 저는 서울대에 갔고 고시에 붙었으니까 머리는 좋지만 나사는 몇 개 빠진 그런 녀석이에요. 알고 계시죠?”
“네가 총명한 것을 내가 왜 몰라.”
“할머니는 아시죠. 다른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보는 것 말이에요.”
4는 네 원소와 네 방위, 4대 복음의 수. 하나의 굳건한 토대. 완전한 수. 엘리베이터는 4층에서 열렸다. 복도는 어두웠다. 비상구를 알리는 초록 불빛만이 눈에 들어왔다.
“고시를 보고, 박수칠 과장님을 만나고, 그 다음에야 저는 제게 주어진 이 무업이, 신을 받고 인간과 하늘 사이에 서야 하는 이 팔자가 그렇게 끔찍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왜 제가, 결국 신내림을 받지 않았는지, 아시죠?”
“……알지.”
김 여사는 괴롭게 중얼거렸다. 2층을 지나, 엘리베이터는 다시 6층으로 향했다. 6은 완전수. 약수의 총 합이 그 자신이 되는, 수학에서 말하는 퍼펙트 넘버. 생각해 보면, 그냥 의미없이 장난처럼 만든 주술이라 해도 이 숫자들의 의미를 굳이 따지고 들면 그 나름대로 통일된 의미는 있었다. 다시 2층을 지나 10층. 10은 최초로 두 자리가 되는 수이며, 동양에서 완전하다고 일컫던 숫자 중 하나다. 최초의 네 정수를 합한 수, 삼각수로 그려 나타낼 수 있는 안정적인 수.
“내가 왜 모르겠느냐, 너와 같은 업을 지녔던 내가.”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거예요.”
동장은 대답했다.
“이제는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분명히 아니까요.”
“그래……”
“저는 할머니처럼, 이 나라를 위해 살고 싸우고, 그렇게는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이제는 지켜야 할 사람이 있으니까요.”
“다르기는 무에가 다르다는 거냐, 이 잔망스런 것.”
김 여사는 투명한 손가락으로 동장의 뺨을 잡아당겼다.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네 증조 할아버지를 위해서였고.”
“뭐예요, 할머니.”
동장은 웃었다.
“전 할머니가 무슨 잔 다르크 같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했는데.”
5층을 눌렀다.
4도 6도 10도, 다 저 나름대로 완벽함을 지닌 수.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2가 놓여 있다. 숫자 2는 의심이요 분쟁, 불화며 분열, 양성. 하나의 가지에 열린 두 개의 열매. 다른 것, 신과 마주하는 타자, 악의 수, 나눔의 수. 창세기의 둘째 날에는 뭘 해서 좋았더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완벽함의 반대, 이 세계와 마주서는 어떤 것. 동장은 거울을 흘낏 쳐다보았다. 5층에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뭐예요.”
동장은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여자가 들어온다더니, 반다인이 서 있었다. 다인은 별 말 없이 어두운 복도에 서 있다가, 엘리베이터 안을 들여다 보고는 얼른 올라탔다. 동장은 웃으며 문을 닫았다. 그리고 1층을 누르며 한 마디 했다.
“괜히 긴장했네요.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잖아요, 이거.”
대답이 없었다.
등 뒤에, 할머니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동장은 순간 엘리베이터가, 아래가 아니라 위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번호판의 숫자가 하나씩, 등차수열을 따라 올라갔다. 8층, 9층, 그리고 10층.
금기.
5층에서 탄 여자에게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가 떠올랐다. 문이 열리려는지, 엘리베이터의 끼익끼익하는 기계음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ps) 역시 초고상태입니다. 중간중간 수정할 수도 있고 오탈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월하의 동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