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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녀의 화학반응(37)

October 30th, 2009

“아하하, 잘 있었어요?”

벨소리에 문부터 열고 보니, 시커먼 얼굴이 눈 앞에 있었다.

“헉.”

“같이 농구 안 뛸래요? 저기 계산공고에 골대 비었던데.”

“농구하자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아, 나 저기 살아요. 도두리마을. 가깝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아무리 내가 양심도 없는 막장 교사라 해도…… 아니, 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이런 상황에서 연지가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그런 로맨스의 한장면같은 시추에이션을 감히 바라마지않았다거나 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집 주소는 어떻게 안 거예요?”

“에이, 마 선생 인트라넷도 안 보는구나. 그렇죠?”

갑자기 나타난 것은 어쩐지 이 비리비리한 나와는 사뭇 대조되는 저 체육교사. 바로 이정훈 선생이었다.

“근데 나 물 한 잔만 줘요. 하아…… 이거,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 더위에 도두리에서 학마을 단지까지 걸어왔더니 돌아가시겠네.”

뭐, 자고로 어마마마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 믿는 사람이 하는 보시중에 제일 좋은 게 물 보시라고 하셨다. 평생 절집에야 수능보기 전하고 임용고사 보기 직전에만 다녀왔던 나이롱중의 나이롱이지만, 그래도 주워들은 가닥은 있으니 이럴때는 좀 어머님 말씀을 존중하는 센스를 발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들어와요. 문 닫고요, 모기 들어오겠네.”

“아, 쏘리쏘리.”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서, 생수 반에 오렌지 주스 반을 부어서는 얼음까지 둥둥 띄워서 주니 순식간에 싹 비우고 헤 하고 웃는데, 이건 사람에게 물 보시를 하는게 아니라 짐승 먹이주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선생은 식탁 의자를 끌어다 앉고 싱글벙글 웃었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어요?”

“마 선생 보니까 좋아서요.”

“……위험한 발언 하지 말고요.”

“뭐가 그렇게 위험한데요?”

헉, 말려들 뻔 했다. 나는 얼른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대꾸했다.

“아니, 지난번에 좀 위험한 만화도 보시길래.”

“아, 뭐. 그거야 순정 보다가 잘못 밟으면 읽는 거고. 걱정하지 말아요. 난 여자가 좋아요.”

“아, 예.”

“뭐 하고 있었어요?”

“그냥……”

물론 이럴 때, 그냥 일하고 있었다거나 콘티 짜고 있었다거나 데생이나 작화중이었다는 소리를 하면 큰일난다.

“그냥 놀았죠, 뭐.”

“만화책도 보고?”

“아, 뭐……”

“어떤 거 보는데요?”

“그냥 뭐…… 누나가 갖다놓은 거……”

“오오!”

이 선생은 눈을 빛냈다.

“나 좀만 보여주면 안돼요?”

“……약은 약사에게, 만화는 만화방에.”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만화는 사서 보는 거죠!”

“그럼 사서 보시……”

“근데, 문제는 내가 순정만화 같은 거 보고 있으면 우리 집에서도 내가 미친 줄 안단 말이에요. 아아, 미치고 팔짝 뛰겠네. 아니, 남자가 체격 좋으면 순정만화도 마음대로 못 봅니까? 이런 부당한 경우가 어디 있어요? 여기 있지, 아참. 그런데 정말, 난 지금까지 순정만화 한 권을 내 마음대로 못 봤어요. 하아…… 그래서 마 선생이, 누님이 만화기자고 하니까…… 이야기가 통할 것 같아서 좋았거든요. 순정도 많이 읽고.”

“좀 그런 편이긴 하죠, 음……”

“그래서 말인데 치키타 구구가 다시 나온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에에? 그거 권당 만원에 샀는데! 다시 나온다고요?”

“에이, 뭐예요 마 선생. 만화기자 동생분이 그런 소식도 못 듣고.”

“어디서 나온대요?”

“조은세상요. 아, 이번에는 8권까지 판권 다 들어와 있대요. 다 낸대요.”

“어, 그거 진짜 다행이네요.”

“그렇죠?”

뭐랄까, 순간 구렁이가 담을 넘은 듯한 미묘한 기분이 들기는 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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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군 그와 그녀의 화학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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