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화학반응(36)
“어떻게 하기는.”
머리를 싸매고 콘티를 짜며, 나는 최대한 무관심 무신경한 태도로 대꾸했다.
“걔 입장에서야, 선생이 학생이랑 학교 안에서 남녀상열지사를 벌이는 게 참 보기 뭣했겠지.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탓인가 하리라, 무슨 쌍화점도 아니고 걔한테 내가 뭐라고 그래?”
“뭐라고 그러긴.”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하는 것은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누나는 갑자기 히죽 웃으며 말을 보태었다.
“다만 말이다, 이런 황금같은 시추에이션을 눈 앞에 두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래도 작가 된 도리는 아닌 것 같아서.”
“응?”
“그걸 어떻게 좀 스토리에 활용해 봐.”
무슨 헛소리야. 하고 생각하는데 누나가 얼른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어때? 윌리엄을 덮치는 우리 주인공을 좋아하는 또다른 남자애를 넣으면.”
“뭐야, 누나.”
“딱 구도 나오잖아. 야, 그 지수라는 애가 연지 라이벌이라며. 그게 정말로 라이벌 의식만 느끼는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 백합, 백합 삘 나잖아, 그냥 딱 봐도.”
그러니까, 지금 누나 말은 소위 삼각관계에 대한 것인데.
“……걔가 날 좋아해서 그럴 가능성은?”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러니까 노멀한 것은 생각도 안 하고 바로 백합으로 넘어가버린 것이다. 이런, 왕년의 오오테이자 현직 만화 기자로 예나 지금이나 뇌의 부패도 하나는 알아줘야 하는 우리 누나다운 생각이긴 한데.
아이고, 누님.
“좋네, 이번 콘티에 그거 넣어봐. 어느 녀석이 숨어서 보고 있고, 다음 번 콘티에는 키스를 엿보고 동영상 찍고. 그래서 윌리엄이 곤란해지는 거 어때? 응?”
“소문 쫙 났어.”
“무슨 소문?”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겨우 조용히 넘어갈까 했는데. 일 안 키우려고 교장실로 부른 거였잖아. 근데 연지 녀석은 나 붙들고 복도에서 끌어안지, 수업 들어가 보니 이미 학교엔 소문이 짜하지. 나 미치겠더라. 그나마 방학 들어갔으니까, 제발 개학할 때 까지 소문이 더 커지지 않았기만 바래야지. 어휴.”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 학교 애들이 다 난 줄 알면 어떻게 해?”
“자의식 과잉일세, 마태오 작가.”
누나는 뒤통수를 툭툭 치며 빙긋 웃었다.
“어차피 너 내일부터 방학이잖아. 개학하고 나면 다들 잊어버릴거야. 그나저나 그거, 어디까지 되었어?”
“콘티?”
“말고, 너 지난번에 한다고 한 것 말이야.”
그러니까 그 베르사이유의 장미가 어쩐지 장미족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는 그것 말이다. 나는 구석에 놓아 둔, 데생까지 끝난 원고용지가 들어있는 파일을 내밀었다.
동인질은 일과는 다른 것이지만, 그렇다 해도 아예 누나의 전폭적지지 하에 동인질을 하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콘티 짜고 글 쓰는 재주는 있을지 몰라도 그림 그리는 쪽으로는 상당히 비루한 그 그림으로 냅다 달리기만 하다 보면, 그렇지 않아도 이제는 세월이 흘러 “어디를 잘라도 짤방감”같은 소리까지 듣게 된 베르사이유의 장미가 개그물이 될 판이었으니, 중간중간 누나의 체크를 받아가며 그림을 그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다 나름 프로로 활동하다 보니 이젠 연출의 완급 조절도 좋아져서, 그 짧은 방학 동안 나는 예전에 쟁여놓은 혜인만화용지 위에 제도잉크로 미친 듯이 컷들을 그리고, 톤을 붙였다. 구름이나 집중선이나 하늘하늘한 레이스나, 그런 것은 포토샵에 적절한 브러시나 패턴이 있으니까 따로 삽질할 필요가 없었다.
“어쩔시구리.”
“왜.”
“그래도 대충 볼만한 걸 만들잖아? 너 그냥 아예 전업만화가 하면 어때?”
“……저기, 이거 말입니다.”
1차로 완성된 원고는, 누나가 대충 확인하고 숙련된 포토샵 솜씨로 인쇄에 적절하게 손을 본 뒤, 돌려주었다. 나는 식자를 붙이고 표지를 그렸다. 코트 차림에 안에 셔츠는 가슴까지 풀어헤친 앙드레에게 애니판의 갈색과 만화판의 쑥색 중 어느 쪽 코트를 입힐까 고민하며 컬러를 입히고, 표지를 그린 김에, 샘플이미지를 만들어 블로그에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짧지만 보람찬 방학이 흘러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