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화학반응(35)
연지가 교장실로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간단하게 말해서 삽질, 좀 폼나게 말하자면 지독한 자기혐오에 빠져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내가 한 말 중에 뭐 틀린 것이야 없었지. 문자 그대로 ‘사실의 적시’ 아니냔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아무래도, 그렇게 말을 하면 안되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실망하겠지. 경멸하겠지. 남자가 되어서는. 그래도,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잃을 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달랐다. 학생인 연지가 내게 키스를 했다고 하면, 주의나 근신 정도는 받을 수도 있겠지만 고3인데다 전교 톱인 애한테 그러기도 쉽지 않을 테지만. 교사인 내가 학생에게 키스를 했다고 하면, 징계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요컨대 잃을 게 많다는 이야기다.
남자니까, 하고 덜컥 책임을 대신 져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도 내가 저지른 일도 아닌 일에 대해서. 하지만 연지는, 뭐라고 할까.
“사생활이라는 게 없네요, 사생활이.”
교장실 와서는, 교장 선생님이 떨리는 목소리로 너와 마동진 선생이 학내에서 서로 입을 맞추고 있었다는데 사실이냐고 묻자마자 나온 대답이 저거였다. 이 녀석.
“그래서 지금 선생님도 여기 붙잡혀 와 계신 거예요? 하아. 저기, 저 마 선생님 좋아하거든요. 물론 학교 안에서 그런 것은 좀 문제인데다가.”
“학교 안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그런데다가 억지로 제가 키스해버린 것은 좀 문제긴 하지만……”
연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학내 면학 분위기를 해쳤다면 죄송해요, 앞으로는 학교 밖에서 할께요.”
“자, 잠깐. 이연지 학생.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 있는 건가?”
“그럼요.”
연지는 폰카로 촬영한 동영상까지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이런 거나 찍어서 고자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선생님들 보시기에 좋지 않았으니까 앞으로는 주의하겠다고 말씀드리는 건데요.”
“이연지 학생.”
당연한 수순으로, 학생주임 선생님이 낯을 잔뜩 찌푸리셨다.
“지금 전교 1등 한다고 안심하고 그러는 모양인데, 이거 징계 감인 것 알아, 몰라?”
“징계 감이요?”
연지는 싱긋 웃었다.
“제가, 키스한 게 아니라 선생님이 눈에 티가 들어가셨길래 그거 불어드렸다고 말씀드렸으면 뭐라고 하셨을 거예요? 그러면 그 동영상 갖다드린 애도 불러서 확인하실 건가요?”
그러니까 사실은 나도, 저녀석이 뭘 믿고 저렇게 자신만만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정 문제가 된다면 징계 받죠, 뭐. 어차피 학교장 추천 같은 건, 저 말고 치맛바람 잘 날리는 집 애한테 주실 거잖아요?”
“아니, 이 녀석이.”
“네가 너 혼자 잘나서 지금 그 성과가 나오는 줄 알아?”
“솔직히 수업, 선생님들도 학원에서 다 배우고 왔으니 넘어가자 넘어가자 하셨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틀린 말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아닌데.
“징계 주시고 싶으시면 받죠, 뭐 그런데 학교 밖에서 그러는 것은 신경도 안 쓰시잖아요. 학교 밖에서 애들 뭐 하시는지 신경도 안 쓰시잖아요.”
이 녀석.
“솔직히 말해서 전 마 선생님 좋아해요.”
지금 누구 잡으려고……
“보란 듯이 서울대 짠 합격해서, 그러고는 선생님한테 고백할 거예요. 선생님들도 제가, 서울대 합격 플래카드 하나 걸어드리면 뭐, 딱히 문제일으킨 것도 없는데 이런 문제로 그러실 필요 없는 거잖아요?”
작정을 한 거냐!
그나마 교사도 공무원의 일종이고, 자기가 실수한 일이 아닌 이상 문책을 당하거나 할 일은 없겠지만. 어떤 의미에서 나로서는 가장 좋은 결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긴 했지만.
아니, 내 문제는 그렇다고 치고 너, 너 아직 학생인데 그렇게 말해도 되는 것이었드냐!
“어차피 저한테 기대하시는 건 그게 다인 거 저도 알고 선생님들도 아는 이야기잖아요?”
“너 무슨 불사조냐.”
결 국 어안이벙벙해 있는 교장 선생님과, 불같이 화를 내는 학생주임 선생님과, 뒤늦게 불려들어와 무슨일인지 상황 파악 하느라 정신없는 우리 반 담임, 최윤형 선생님을 남겨두고, 나는 거의 도망치다시피 연지의 손을 붙들어 끌고 나왔다. 이건 뭐 거의 잡히면 죽었다 수준도 아니고.
“선생님들한테 그러면 어떻게 해.”
“틀린 말은 아니었잖아요?”
아 니, 지금 저가 얼마나 황당하고 위험한 짓을 하고 온 건지, 이 녀석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황당하다 못해, 화가 치밀었다. 그냥 자기 잘났다고 치기어린 잘난 척을 하는 것이라면, 딱 그만큼 꾸짖고 말면 될 문제다. 하지만 연지가 하는 짓은 또, 그런 것도 아니었다. 연지는 깔깔거리고 소리내어 웃어대었다.
“졸업하기 전에 말이에요, 한번쯤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다 사실이잖아요?”
“얌마.”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 녀석, 머리는 그렇게 좋은 녀석이 왜 자꾸.
“물론 추천입학이나 그런 것은 몰라도, 내신도 있고. 조금은 더 참아도 되잖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입시 끝나고서 해도 되고……”
“선생님이 좋아요, 전.”
“……”
“만화 스토리작가 마태오도 좋아하고, 지금 여기 화학선생님인 마동진 선생님도 좋아해요. 키스 말이에요, 제가 장난으로 했다고 생각하신 건 아니죠? 이슈 안 보셨어요? 첫키스를 실수로 하는 여자애가 어디 있어요. 실수도 장난도 아니에요.”
나는, 할말이 없었다. 무엇이 되었건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을 열면 엉뚱한 소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이 녀석은 복도에 지나다니는 애들이 뻔히 바라보는 가운데 내 목에 팔을 감고는 꼭 끌어안았다. 나는 나보다 한참은 어린 제자 녀석에게 끌어안긴 채, 무의미하건 어떻건 간에 저항을 하고 있다는 증거인 듯 팔을 파닥거렸다. 이러다가 나는, 발령받은 첫 해로 제자를 공략한 희대의 껄떡교사로 교육청 역사에 찬란하게 남고 말 노릇이었다. 그때, 연지가 내 귀에 속삭였다.
“이과의 김지수가 한 짓인데, 어떻게 하실 거예요?”












서울대 수시모집 전형이라는 게 학교장추천인 지역균형전형이랑 그냥 자기소개서랑 추천서 내면 되는 특기자 전형이 있는데, 지역균형 같은 경우는 워낙 내신이 소수점 단위로 피말리다 보니까 치맛바람으로 써주는 경우는 잘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1등이 포기하면 보통 2등, 3등한테 가는데, 서울지역 기준으로는 2등이 가서 1차합격이라도 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고 하더라구요..
(덤으로 특기자 전형은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제가 다니던 학교의 경우 이과에서만 10명 넘게 썼습니다.. 인원수가 제한 있는게 아니고, 원서료도 사립대에 비해 훨씬 싸니까 선생님들도 밑져야 본전이라고 성적 좋은 애들한테 마구 들이미시더라구요;;)
추천입학에 대해 지난번에 볼 때도 그냥 생각했던 건데, 그냥 한번 올려봅니다..;;
@미리암
아, 그러고 보니 작년 기준입니다. 올해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크게 바뀌진 않았을꺼에요^^;;
아하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게 이번 소설은 정말로 공부 안하고 손 끌리는 대로 써보자 했더니
저 대학갈 때 분위기가 반영이 되었달까요……
제가 공부좀 하는 분위기의 고등학교에 잘못 들어갔더니;;;; -_-+
고등학교 분위기를 좀 얄딱구리하게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 흐흐.
일단은 둬보고, 혹시 이런 거라도 책으로 내보자는 대인배 출판사라도 나타나면 그때 꼭 수정할께요. ㅎㅎ
늘 이 시리즈를 재밌게 보다 갑니다 ㅋ
근데 요번자를 읽어보니 ‘아무리 옳은 말이라고 해도 공개된 곳에서 상대방 들으라는 듯 하기엔 좀 그런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게,
저도 사회에 찌들었나 봅니다 ㅋ
하기사 고교생이라면 저럴 수도 있겠지요 ㅋ
일전에 신센구미 관련 리플을 남겼을 때도 느꼈지만,
비밀 댓글 기능이 없다는 건 참 불편하네요-_-;
바로 삭제하신 걸 보고 좀 죄송하게 생각했었는데-_-;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