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그와 그녀의 화학반응 > 그와 그녀의 화학반응(29)

그와 그녀의 화학반응(29)

September 21st, 2009

“중학교 때 차이나 펀드에 넣어봤어요. 근데 그때 절정 찍고 수수수 떨어져서 지금은 캐망했고요. 근데 작년에, 바닥 덕덕 긁었잖아요, 지수며 뭐며. 그때까지 세뱃돈이며 뭐며,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랑 저축한거랑 해서 펀드에 좀 넣고, 시험성적을 인질삼아서 몇번 뜯고, 책값 삥쳐서 넣고 세뱃돈 넣고. 아, 친척들이 좀 있어서 세뱃돈 모아놓은게 좀 되거든요. 그래서 하여간 넣었어요. 고3이라고 친척들이 용돈 주면 감사히 받아다가 넣고.”

“그래서?”

“그래서는요, 그래서 지금 1600까지 올라왔잖아요, 코스피 지수가. 인덱스 펀드 종류에 넣어놓으니까, 지수대로 가요. 지금 잘 뛰었어요. 음, 저 첫학기 등록금은 할 만큼 되었는데, 1700 찍으면 환매를 할까 어쩔까 보는 거예요. 하아, 9월 10월 들어가면 그땐 조정 있어도 환매며 뭐며 하기 힘든데. 할 수 없지. 어떤 펀드건 3년 묵히면 손해보는 것은 없다잖아요. 그 말아먹은 차이나 펀드도 대충 다 수복했고.”

뭔가 이거, 최근에 본 누구 소설에서는 도깨비도 펀드에 돈을 붓더만. 이젠 여고생도 펀드질이냐. 대체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는 뭐하다가 아직도 펀드 하나 안 든 거야. 삽질이 절로 일어나는 시추에이션이었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전 노는 게 좋아요. 코스프레 하는 게 좋고, 책 사서 보는 거 좋아하고. 맛있는 거 먹는 것도 좋아해요. 근데 그러고 살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돈만 필요한게 아니라 시간도 필요한데, 아시다시피…… 가 아니라 우리 오빠가 그러더라고요. 오빠네 선배들이 그러는데, 자고로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남아돌면 돈이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요. 뭐, 전 그 말에는 찬성 안 해요. 쌤, 오마하의 현자 워렌 버핏이, 연간 수익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그, 글쎄….. 한……”

“20%래요.”

“……그것밖에 안돼?”

“쌤은 이과 나오셨으면서 무슨 대답이 그래요?”

연지는 혀를 끌끌 찼다. 혀 차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주식투자나 그런 건 복리잖아요. 1000만원이 있다고요. 이거 원금을 두고 연 20%씩 복리로 두면요, 30년 있으면 이게 23억 7천만원이 된단 말이에요. 근데요 쌤, 한번 천만원 넣어 놓고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 기다리듯이 앉아서 손가락만 빨 것 아니잖아요.”

“그, 그렇지?”

“매년 천만원씩 계속 넣으면요. 이거 연리 20% 정기적금에 매년 천만원 넣는 거잖아요. 대충 계산해도, 적금 복리계산식 쓰면 237에다가 1.2 곱하고 0.2로 나누니까, 140억쯤 나오죠. 근데요 쌤, 매년 천만원이면 한달에 얼마인지 아세요?”

“그, 글쎄?”

“83만 4천원. 85만원씩 넣으면 남아서 연말에 닌텐도 한대씩 사셔도 돼요. 쌤 한달에 얼마 저축하시는데요?”

“……저기 나 지난번이 첫 월급인데.”

“그러면 이번달부터 저축을 하세요. 이왕이면 CMA로. 아, 월급의 반을 저축한다고 생각하시면 얼마 나올까요? 우리 외삼촌이 그러는데, 저축은 신입사원때 빡세게 해야 하는 거랬거든요.”

CMA라. 들어본 적은 있는 것이니까 누나한테 물어보고 가입해야겠군.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복잡했다. 대체 이녀석 뭐야. 그런 내 생각은 아랑곳않고, 연지는 아주 제 흥에 겨워서, 계속 신이 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아, 그래서 제 장래희망은요, 놀고먹는 거예요. 잘 놀고 먹기 위해 돈이 필요하니까 일단은 일하고. 공부해서 투자하고. 그러려면, 제 인생은 아무래도 돈문제에 있어서는 모험과 신비가 가득할 테니까.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저라고 그래도 처음부터 빵빵 터질 수는 없잖아요. 실패도 하겠죠. 그러니까 자산이 어느정도 불어날 때 까지는, 적더라도 매달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는 남자와 결혼하면 좋을 것 같아요. 교사도 괜찮은데 쌤은 어떠세요?”

“으…… 뭐?”

“제 말 믿고 따라주시면 딱, 40세 되는 해에 은퇴해서 행복한 셔터맨 인생을 즐기게 해 드릴께요. 싫으세요?”

어라라라라라?

그러니까 말이다.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내 꿈은 약사나 교사와 결혼해서 셔터맨이 되는 것이었다. 맞벌이를 하는게 아니라, 셔터맨. 그래서 낮에는 가사를 돌보고 동인질을 하며 행복하게 사는 거다. 돈 잘 버는 잘난 싸모님을 만나서 말이다. 그런데.

“……저기 그거 지금 너.”

“맞아요.”

정신이 반쯤 나간 나를 앞에 두고, 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한테 고백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저 좋아하는 거 깨닫는 거 기다리다가는 호호할머니가 될 것 같아서 말이에요. 아, 전 아직 수험생이고 게다가 미성년자니까, 수능 끝나고 대답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하여간, 백일반지 해주시는 거죠?”

죄송합니다, 하느님, 부처님.

고백할께요. 저, 잠시 그 말에 혹했어요. 선생이 되어서는, 아직 철없는 고딩이 하는 그런 말에 홀랑 넘어갈 뻔 했다고요. 으아아, 그런데다 저녀석 미성년자잖아, 정말.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학교 안에서 대체 그런 피도 안 마른 어린 것한테 난 무슨 짓을 당하고 만 거야!

마가린 바르기 bookmarkr.net metags WZD.com 네이버에 북마크 다음에 북마크 HanRSS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Pumfit에 글 올리기 News2.0에 투고하기 del.icio.us에 북마크하기 댓글 RSS 붐바

해명군 그와 그녀의 화학반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