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네타의 극의;;;;;;
이름만 들어도 내용이 보이는 이름네타.
그 극의에 달한 게, 요즘 나오는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이다. 얼마나 이름네타가 대단한가 하면
드라마를 안 보다가 한 편 보고 일어난 제가 이름을 꿸 정도였습니다.
한심한(아버지), 한원수, 한복수, 한선수(자식들)
한복수의 남편 이기적, 시아버지 이화상.
이기적이 바람피우는 여자 정나미.
정나미의 오쟁이진 남편이었는데 서로 위로하다가 한복수에게 향하는 지고지순남 길억
그밖에도 모지란, 복분자, 안양순 등등 이름만 봐도 캐릭터가 보이는 이름이 가득하다. 이름짓기 얼마나 귀찮으면 이런. 이라고 하다가 생각해 보니, 아줌마들이 한두회 놓쳐도 부담없이 볼 수 있게 하겠다는 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들었다.
그건 그렇고.
“일본은 이렇게 쓰고 저렇게 읽고, 읽는 방법도 있고 발음이 같은데 뜻이 다르거나 해서 만화나 그런 데 이름네타가 꽤 있잖아요. 복선이 될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름네타는 아무래도 쓰이는게 섬세하지 못해요!”
영희군과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문득 생각이 나서 한 마디 했다.
“내가 1980년대 후반에 피아노 학원에 다닐 적에, 학원에 새벗이 있었어.”
새벗이라 하면, 그 기독교계 어린이 잡지 말이다. 아마 요즘도 나오는 것 같던데.
“그 새벗에서는 새벗 어린이 문고라고, 명작들을 애들 좋게 읽게 나온게 있었거든. 아, 다른 데보다 기독교 관련 작품들이 많았고. 그런데 그 중에 천로역정이 있었어. 너도 알다시피 천로역정만큼 이름네타 한 네타 하는 게 어디 있냐.”
천로역정의 주인공은 크리스천, 등장인물 중에는 인터프리터니 고집이니 줏대없음이니 하는 이름이 대놓고 나옵니다.
“그렇죠.”
“근데 새벗판에는 이름이 달랐어.”
“어떻게 달랐는데요?”
“김믿음.”
하여간 적절한 이름네타는 삶의 활엽수;;; 가 아니라 활력소라는 이야기였습니다. 흠, 흠!
아무리 조강지처 클럽이 노력한들, 사는 동네 이름마저 네타였던(장망동인가 장망성인가 그렇게 번역되었었죠) 천로역정 따라가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