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읽었을 때의 제목은 원문 그대로 앨저논에게 꽃다발을. 이었지만
새로 나온 것은 무슨 싸구려 인생 철학서같은 제목이라 참으로 짜증이 났다.
게다가 대니얼 키스의 책이라 키스 하링의 그림을 올렸는지 모르겠지만
표지 센스도 이건 아니다 싶었고.

어쨌건 다시 읽게 된 것은 그 드라마 "안녕하세요 하느님"에 대한
뉴스를 보고 화딱지가 나서다. PD라는 인간들은 원래 개념이 없는 건가?
뼈대는 따오고 인물과 배경을 바꾸면 다른 작품이 되는가?
앞으로도 PD들과는 웬만하면 상종하지 않는 인생을 살고 싶어졌다.....

하여간에. 앨저논은 찰리 고든의 인생을 반영하는 존재였고
마지막에 찰리가 그 실험용 쥐의 무덤에 꽃을 놓아주면 감사하겠다고
부탁하는 것도, 그가 "자기연민"을 배웠다는 뜻이 아닐까 싶은 기분.

케닐페톤뇨증으로 정상인보다 지능이 낮은 찰리 고든은 빵집에서 일하며
나름대로 행복하게 지내고 있지만, 자신이 더 많이 알게 되면
사람들과 더 가까워 질 거라고 생각한다.
맞춤법이 틀린, 어린아이같은 문장으로 나는 유식해지고 싶다 말하는 찰리는
실험에 투입되어 자신의 지능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보고 기뻐하지만
감정은 어린아이인데 지능만 천재가 되어버린 찰리는 혼란에 빠진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고 업신여기며 즐거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학자들도 자신을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데다
실험쥐 앨저논의 상태로 보아, 자신도 앨저논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지능을 얻은 만큼 빠르게 모든 것을 잃어 가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잊고 있었던, 혹은 지우고 싶었을 가족들에 대한 기억은
처음에는 분노를 느끼게 하지만, 뒤로 갈 수록
가족들 역시 그 때문에 힘들었음을 느끼게 한다.

처음에 자신에게 이것저것을 가르쳐 준 키니언을 사랑하게 되지만
처음에는 키니언에게 배우며 그녀를 존경하던 마음이
동등해지고, 다시 키니언의 두뇌를 넘어서며 두 사람의 관계가 역전되어
갈등하는 과정은 안타깝기까지 하다.
다시 찰리가 모든 것을 잃어갈 때 키니언은 그의 곁에 있었지만
결국 찰리는 견디지 못하고 키니언을 쫓아보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도, 지능을 잃고 기억을 잃었다고 하여도
감정이나 추억까지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행복했던 찰리는 슬픔과 상실과 다른 많은 감정을 배우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것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