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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신이시여 나무아미타불 인샬라 아멘. …..간단히 말하자면 지난 토요일에 예전 직장에서의 대리님과 같이 점심을 먹었고, 대리님께서 시사회 당첨되었으니 영화를 보여주신다고 하셔서 따라갔는데 하필 그게 저거였다. 물론 대리님 세대에야 공지영이 먹히겠지만, 그리고 고등어니 무소의 뿔이니 나올 적에 고등학생이었던 내 주변에서 공지영을 씹으면 어린애 취급을 받는 웃기는 일에다가, 국어선생님이 독후감 작품으로 공지영의 소설들을 줄줄이 올려놓는 황당한 꼬라지도 보았는데도 어쨌거나 특유의 생존전략으로 피식피식 비웃으며 대충대충 쓴 독후감에 문화상품권까지 받아왔으니 이건 훌륭한 것일까나. 하여간 나는 공지영을 싫어한다. 그녀는 싸구려 센티멘탈리즘으로 포장한 운동권을 골수가 빠지도록 우려서 어느새 속물이 되어가는 자신을 슬퍼하던 당시에는 30대 초반이었던 우리의 선배 386들에게 잘 팔아먹었고, 21세기인 지금은 여전히 중학생이나 울리면 딱 맞을 만큼의 눈물 빼먹기에 몰두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책은 잘 나간다. 문학계의 대박작이라고들 한다. 왜 그녀가 그런데도 상을 못 받았느냐고? 물론 그녀의 말대로 문학계에서 그녀가 미운털이 박혔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상 하나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가는 것이, 이봐요, 할리퀸 소설에 상 주는 나라 봤냐. 그 사람의 감수성은 딱 그 수준이기 때문인 거다. 무슨, 꽉 막힌 문학계는. 아직도 자기가 투사의 찌꺼기인줄 아나. 하여간 영화의 감상은 간단하게 한줄로 요약할 수 있다. 미친년과 살인자의 자위같은 사랑, 혹은 자기 변명기. 나는 서대문에서 영화를 보고 대리님과 헤어져 영풍문고까지 걸어갔고, 거기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다시 한번 속독했다. (참고로 아무리 밥맛없어도 나는, 적어도 비판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베스트라 불리는 소설들은 한번 읽어주자 주의다.) 소설보다 영화가 조금 더 싸구려였으며, 만약에 그 살인범이 강동원같은 미남이 아니었다면 영화가 얼마나 재미있고 웃겼을까도 생각했다. 사방의 여자들이 다 우는 가운데 나는 혼자 갑갑했다. 사형수에게 동정을 품고 어느새 그 사랑을 공감하다가 마지막에 버튼까지 누르게 된 주임이 한심했고, 어이없을 정도로 미화된 교도소가 우스웠다. 소설은 엿같았지만 영화는 좆같았다. 왜 사람들이 저런 것을 보며 우는지, 어쩌면 대사 치는 것이 할리퀸 소설은 물론이고 귀여니의 생생함조차 없는, 그저 박제된 대사인지를 생각하며 나는 어둠 속에서 소리죽여 웃었다. 영화를 보여주신 대리님 때문에라도 차마 키득거릴 수는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정동 스타벅스 앞에서 웬 노숙자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슬리퍼가 벗겨져 있었고, 가까이 다가가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잠들었거나 취했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이 임박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세탁한 코트 때문에라도 흔들어 깨울 수는 없어서, 나는 광화문으로 걸어가다가 112에 전화를 했다. 그 만큼의 센티멘털. 45초 걸리는 신고만큼의. 그만큼의 영양가나 있을까 몰라. 죽고 싶은 사람은 죽으라고 해. 결국은 왕년의 가수이자 대학 이사장 따님이고 교수이기까지 한 사람의 배부른 자살기도를, 원인 돌릴 데 없으니까 강간과 가족의 무관심으로 적당히 돌려버리는 것도 1990년대 초반 감성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 시절이 괴로웠고 부모에게 버림받았고 동생이 노숙하다가 그리 죽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반성했고 사랑하고 있으니까 사람 죽인 놈에게 동정심을 품어야 하나? 천.만.에. 1963년 생. 이미 유혹받지 않는다 하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그런 싸구려 감수성이라니. 진저리가 난다. 그런 글을 쓰고싶지 않다. 사십이 넘어서 그렇게 유치한 것 밖에 쓰지 못하느니 차라리 절필하는 게 아름답지. 나이가 들어도 무뎌지지 않는 것과,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철이 없는 것은 다르다. 공지영의 글에 묻어나는 공지영은 후자다. 여전히 그녀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소녀다. 불행히도, 여전히.
